자국 해운사도 외면한 日 조선업계, 마지막으로 꺼낸 '적과의 동침'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0.08.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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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해운사도 외면한 日 조선업계, 마지막으로 꺼낸 '적과의 동침'


일본 조선업계가 역대 최악의 불황 극복을 위해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경쟁업체들이 서로 손잡고 수주 절벽 극복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도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을 발주하는 해운업체에게 최대 수 십 조원의 금융지원에 나서며 조선업계 물량 수주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일본 4위 조선소인 츠네이시홀딩스와 8위 미쓰이E&S홀딩스는 지난 7월 말 자본제휴를 발표한 이래 신규 선박 수주에 적극 협력하고 나섰다. 양사는 연내 자본제휴 합의를 끝내고, 2021년 10월까지 합자회사를 출자하기로 했다.

두 조선업체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사는 2018년 5월에도 수주절벽 대응책으로 제조 거점을 함께 공유하며 연합전선을 펴왔다. 하지만 그래도 수주가 부진하자 이번엔 아예 합자회사를 설립해 공동으로 수주전에 뛰어들기로 했다. 양사는 영업부터 설계, 연구개발 내용 등도 함께 교류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 내 조선사 순위도 바뀐다. 지난해 기준 츠네이시와 미쓰이E&S의 건조량은 각각 182만톤, 76만톤으로 합치면 258만톤이 된다. 이는 일본 2위 조선소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건조량 270만톤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일본 3위 조선소인 가와사키중공업의 건조량(228만톤)은 훌쩍 뛰어넘는다. 사실상 츠네이시와 미쓰이E&S가 일본 3위 조선소로 활약하게 되는 셈이다.

日조선 합작사 세우고…日정부 수십조원 금융지원
일본 조선업계의 수주 절벽 타개를 위한 '합종연횡'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본 1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은 지난해 11월에 조선업계 2위인 JMU와 개발·영업회사를 설립하는 제휴를 맺었다. 양사의 합작사 십야드(Nippon Ship Yard)는 오는 10월부터 공식 출범한다.

일본 정부도 자국 조선업계의 불황 탈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올 하반기 일본 조선·해운업계에 수 조~수 십 조원에 달하는 금융 지원을 단행하는 것이다. 특히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을 발주하는 해운업체에는 1척당 수 천 억원의 자금을 저리로 지원해준다. 적극적인 선박 발주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전체 지원금은 수 조원에서 수 십 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런 지원 정책은 이전까지 일본 정부가 시행해왔던 조선업계 금융지원정책과 180도 다르다. 일본은 한국이 조선업 육성을 위해 부당하게 공적 지원금을 투입하고 있다며 기회만 되면 이를 비판해왔다. 급기야 2018년 말에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금융지원을 '보조금 협정 위반'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15년 세계 점유율 28%였던 일본 조선산업이 2019년 점유율 13%까지 추락하며 일본 정부도 더 이상 구경만 할 순 없는 처지가 됐다. 이 기간 한국은 30%에서 37%로 점유율을 키웠고, 중국도 28%에서 33%로 점유율이 증가했다.

더욱이 일본 자국 해운업체까지 일본 조선사에는 발주를 넣지 않고 있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굳이 자국 조선사를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해운기업의 자국 조선사 발주 비율은 1996~2000년에는 94%에 달했지만 2014~2018년에는 75%로 줄고 있다.

앞서가는 韓·中 조선…"日조선 위협 안 돼"
안팎으로 위기에 내몰린 일본 조선업계는 급기야 경쟁사와 협력해 합작사를 만들며 '규모의 경제'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 발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조선업 빅3는 일본 조선업계의 협력 확산과 일본 정부의 금융지원이 당장 한국 조선업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미 글로벌 1·2위 국가인 한국과 중국 조선업계는 대규모 합병을 추진한 지 오래로 실제 결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국영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은 중국선박중공그룹(CSIC)와 합병을 끝내고, 세계 1위 조선사로 거듭났다. 한국에선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도 인수·합병을 추진 중이다.

이렇다보니 글로벌 조선업계가 초대형사 위주로 재편되는 상황이어서 중소형 중심인 일본 조선업체들은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단적으로 컨테이너선 같은 상선 건조 부문은 중국에게 가격 면에서 밀리고 있고,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은 한국에게 기술력에서 뒤지는 모습이다.

한국 조선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은 조선 기술의 강국이었지만 엔지니어링이나 기술력 제고 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경쟁력이 떨어졌다"며 "한국 조선 3사 입장에선 일본 조선업계의 추격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선 일본 조선업이 저력이 있는 만큼 업체 간 합종연횡이나 일본 정부의 지원 효과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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