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보건장관 대만 방문, 미국의 대중전략 전환 상징하는 사건

뉴스1 제공 2020.08.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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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1979년 단교 이래 최고위 인사 방문"
"대만, 트럼프엔 '장기판 卒'에 불과할 수도"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장관이 9일 오후 대만 수도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관용 항공기 편으로 도착했다. © AFP=뉴스1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장관이 9일 오후 대만 수도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관용 항공기 편으로 도착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장관의 대만 방문을 두고 "미 정부의 대중 전략 전환을 상징한다"는 등의 외신평가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자 대만 타이베이(臺北)발 기사에서 "에이자 장관의 이번 방문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대만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에이자 장관은 이날 오후 관용 항공기편으로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미 보건장관의 대만 방문은 미 정부가 지난 1979년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대만과 단교한 이후 처음. 따라서 에이자 장관은 미·대만 단교 이래 대만을 찾은 미 정부 인사 중 최고위급이 된다.

미 정부는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에 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협력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분야에서 전방위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하다는 게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 美, 1979년 중국과 수교 후 대만과는 '거리두기'

미 정부는 중국과의 수교 이후 41년 간 대만과 '공식적 관계'를 맺는 걸 주저해왔지만, 비공식적으론 군사적 지원 등을 통해 대만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특히 명목상 민간기구인 '미국 재대만협회'(AIT)와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가 양측 수도에서 사실상 대사관의 기능을 수행해온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다만 미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그동안엔 AIT를 거치지 않고선 대만 측과 접촉할 수 없었고, 공식 문서상에선 대만을 '정부'(government)가 아닌'당국'(authorities)으로 지칭해야 했다. 또 미 정부 소유 건물 내에선 대만 당국자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했었다.


샤오비킴 미국 주재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장(왼쪽)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데이비스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만났다.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 뉴스1샤오비킴 미국 주재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장(왼쪽)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데이비스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만났다.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 뉴스1
그러나 가오셔타이(高碩泰) 전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장이 지난달 이임인사를 전하기 위해 미 국무부 청사를 방문한 데다, 샤오비킴(蕭美琴) 신임 처장 역시 국무부 청사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상견례를 나눠 이 같은 '제한' 규정도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FT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 정부는 사이버 보안에서부터 성평등 문제, 무기 거래, 고위급 인사 교류 등에서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해왔다"면서 "정치권 등에서도 반중 여론이 고조되면서 대만에 대한 외교적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 트럼프 취임 후 '美·대만 협력' 심화…중국은 반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모두 6건의 대만 지원 관련 법률에 서명했다. 이 중엔 미국이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와 활동을 돕는 내용의 법안도 포함돼 있어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중국의 반발이 계속될수록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의 '친대만' 발언 또한 그 강도가 세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자료사진> © AFP=뉴스1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자료사진> © AFP=뉴스1
일례로 폼페이오 장관은 올 1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자 차이 총통을 '프레지던트'(President)로 칭하는 내용의 축하 성명을 냈다. 미 국무장관이 대만 총통 선거 결과와 관련해 축하 성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최근 미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선 이전과 달리 '프레지던트' 대신 '공산당 총서기'(General Secretary)란 직함을 쓰고, 중국 정부도 '중국 공산당'(CCP·Chinese Communist Party)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진핑이 공산당 대표(총서기)이지 중국의 대표(주석)가 아니라는 의미다.

◇ 전문가들 "트럼프, 대만을 장기판 '졸'처럼 쓰다 버릴 수도"

이에 대해 셸리 리거 미 데이비슨대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미 정부 내엔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만이 미국적 가치를 지지하는 우방이라고 믿는다"며 "또 미국이 중국과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중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를 격상시키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윌리엄 스탠튼 전 AIT 회장도 "중국의 지속적인 위협은 미국과 대만 모두가 우려해야 할 사항"이라며 "우리(미국)가 (대만과의 관계를) 봉투에 넣고 봉인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봉투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대만 당국은 이 같은 미국의 '친대만' 기류에 대해 당연히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만과의 관계에서 많은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으나, 대만의 경제적 이익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의 압력 때문에 대만이 아시아 역내 무역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미 정부는 대만과의 양자무역 협정 체결 문제 등은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FT는 "미국의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華爲) 제재는 화웨이에 반도체 칩셋을 공급해온 대만 업체 TSMC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의 위험부담이 커질 경우 대만을 장기판의 '졸'(卒)처럼 쓰다가 버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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