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지말라"…떠나는 검사들이 남긴 메시지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0.08.0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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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조직을 떠나는 검사들이 7일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이날은 법무부가 검사장급 간부 26명의 인사를 단행한 날이다.



양부남 고검장 "요즘 참으로 가슴아프다…기죽지말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13일 오후 부산검찰청을 방문해 양부남 부산고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윤 총장은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갖는다./사진=뉴스1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13일 오후 부산검찰청을 방문해 양부남 부산고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윤 총장은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갖는다./사진=뉴스1


지난달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양부남 부산고검장(59·22기)은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서 "요즘 수사 관련 법률 개정 등으로 검찰 조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게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면서 "너무 기죽지 말고 지금까지 국가발전과 사회 안정에 기여한 점에 대해 자긍심을 잊지 말자"며 사직 인사를 전했다.

이어 "아무리 여건이 어려워도 인권보장, 정의실현, 진실발견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자"며 "이것은 누가 알아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검찰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양 고검장은 검찰조직이 정의실현에 매몰돼 인간애가 사라진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고도 했다. 그는 "훌륭한 포수, 능력있는 포수는 창공을 날아다니는 맹금을 잡는다"면서 "옹졸한 포수는 잡혀와 새장에 들어있는 새에 대해 정체를 파악하겠다며 털도 뽑아보고, 뼈도 꺾어본다. 그러다가 새를 죽이고 만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거악을 척결하지 못하고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너무 엄격한 검찰권을 행사함으로써 포수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자"고 전했다.

끝으로 "사건 하나 했다고 기뻐할 게 아니고 개개인 사건에 있어서 범죄의 동기와 범죄자의 처한 형편을 잘 살펴봐야 한다"며 "형편에 따라 검찰권을 유연하게 행사하는 것이 실질적인 인권보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당부했다.


조상준 검사장 "절대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라"
조상준 서울고검 차장검사/사진=뉴스1조상준 서울고검 차장검사/사진=뉴스1
지난달 사의를 표명한 조상준 서울고검 차장검사(50·사법연수원26기)도 이날 이프로스에 '검찰을 떠나며 인사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조 검사장은 "지난 20년을 온전히 검찰과 함께 했다"며 "최고의 검사, 수사관, 실무관님들과 근무하는 행복을 누렸다"고 회상했다.

조 검사장은 "제도적 한계와 일부 운용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는 검찰은 정의롭고 유능하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조직"이라며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기록에 파묻혀 범죄와 싸우고있는 구성원 한분 한분의 정성과 노력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들이 축적돼 검찰의 여러 바람직한 성과를 이뤄낼 것이라 믿는다"며 "일희일비 하지 마시고 절대로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경시하지 않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태산같은 자부심으로 업무에 임하시고 업무를 마친 후 '한 점 부끄러움 없었다'며 스스로 미소 짓는 여유를 가지시면 좋겠다"며 "저도 밖에 나가 후배님들께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겠다"고 전했다.

김영대 고검장 "위기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
사진공동취재단 = 김영대 서울고검장이 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김영대 서울고검장이 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김영대 서울고검장(57·사법연수원 22기)은 이날 서울고검 제1회의실에서 열린 퇴임식을 가졌다. 김 고검장은 "1993년부터 시작한검사생활 27년 4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검찰을 사랑했다"며 운을뗐다.

후배 검사들에게는 "위기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에 따라 처리한다면 그에 관한 논란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실은 잠시 가릴 수 있지만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진실에 따라 공정하게 사건 처리를 하면 장애물이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 고검장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수사는 생물"이라며 "사안 규명을 하다보면 어디로 어떻게 번질지 모른다. 수사 범위를 극히 제한하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주장했다.

이어 "규정에서는 검찰 직접 수사를 적절히 허용하면서도 운용을 엄격히 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형사사법시스템은 한 번 만들면 백년은 가야 한다. 이해 관계를 떠나서,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역사에 남을 제도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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