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쓰러진 곳은 목적지가 아니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20.08.08 07:00
글자크기

<214> 김분홍 시인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시인의 집]쓰러진 곳은 목적지가 아니다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분홍(1963~ ) 시인의 첫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는 고통스럽고 암담한 현실을 환상과 상상, 문장으로 덧씌우고 있다. 사물과 문장의 미로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다 보면 상처 입은 삶이 엿보인다. 시인은 “무에서 유가 이렇게 폭발”(이하 ‘초파리의 시간’)하듯, 독특한 “이미지 배양법”으로 시를 쓴다.

시 ‘가을 우물’에서 보듯, 시인의 상처는 사랑의 사건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문장과 상상력 뒤에 숨어 있다. 겹겹이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야 그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겨우 알 수 있다. 시 ‘가을 우물’에서도 성적 이미지를 포착하려면 우물 속을 한참 들여다보아야 한다. 물론 시는 하나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김분홍의 시 대부분이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인은 권력의 폭력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한집안에서의 폭력은 주로 아버지나 남편과 같이 소위 가장이라는 남성에 의해 자행된다. 이때 폭력은 단순히 신체적 가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인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문제를 통해 죽음을 사유한다.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양면성과 야만성, 사회의 폭력이 존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적 진술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저 지우개는 고장 난 시간
저 단추는 자물통의 비밀번호
저 무늬는 빗소리
저 율동은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
저 주름은 음모가 많은 가방
저 배경은 버려진 우물
저 뒷모습은 봄날의 의자
저 향기는 눈구멍만 뚫린 복면



- ‘원피스’ 전문


이번 시집에서 여는 시 ‘원피스’는 씨앗과 같다. 원피스라는 씨앗에서 발아해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반대로 말하면 가지와 잎과 열매가 모여 ‘원피스’가 된다. ‘저’라는 지시대명사는 사물이나 사건, 시간과 나와의 간격이다. ‘저’만큼 “우리의 간격”(‘오데사 계단’)은 벌어져 있다. 암호문 같은 이 시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시집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우선 원피스는 상의와 하의가 이어진 옷, 주로 치마를 가리킨다.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고, 무언가 사랑의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시 ‘수박’의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다녔”는데 “휴일이 필요한 사건들을 생각하다가” “흔적이 흔적을 감췄”다와 연결된다. ‘지우개’라는 사물은 잘못 쓴 글씨를 지우는 역할을 한다. 즉 안 좋은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것이다. “기억은 타이어 마찰음처럼 히스테리”(‘선조체 지우기’)하다. 잊히지 않는 기억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시작이 잘못되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이와 반대로 강제로 단추를 풀었다는 것은 무슨 일을 당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자물통’은 열쇠가 없거나 비밀번호를 모르면 열 수가 없다. 하지만 단추가 “자물통의 비밀번호”라면 너무나 쉽게 열릴 것이다. 시 ‘수선화에 초인종이 울리는 동안’에서 “나는 천성이 과묵하다”며 “그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발설한 적 없다/ 나에겐 비밀번호를 모를 자물쇠가 달려 있다”고 했다.

‘무늬’는 삶의 무늬다. 사람마다 무늬도, 색깔도 다르다. 봄날처럼 화창한 삶도 있을 것이고, 장마 같은 삶도 있을 것이다. “색만 나열한다고 무지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무지개’). ‘빗소리’가 좋을 때도 있겠지만 늘 듣는 빗소리라면 지겨울 수밖에 없다. 빗소리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한 눈물이라면, 비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고 보면 속에서”(‘옥수수’) 응어리들이 자란다.

당나귀는 볼품없는 당신의 다른 이름이다. “포획한 물고기를 감금시키기도 하고 풀어 주기도 하는 당신의 이중성”(이하 ‘스타킹에서 어망의 구멍을 탐색하다’)이다. “한 이불에서 부풀어 오르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다가 세월만 간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간다. “혼외자 의혹은 사실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라는 당신”(‘기념식수’), “당신의 혀는 양파 속”(‘오데사 계단’)이다. 거짓말만 늘어놓는다. 가방을 싼다.

당신이 떠나고, 나는 “버려진 우물”처럼 남겨진다. 시 ‘가을 우물’에서 보듯, 우물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당신이 떠난 ‘뒷모습’에서 “봄날의 의자” 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설정하고/ 가야 할 곳을 향해/ 길을 펼”(이하 ‘러닝머신’)친다. 아직은 “눈구멍만 뚫린” 것 같은 희미한 희망이지만 “쓰러진 곳은 언제나 목적지가 아니”므로 힘을 내서 길을 간다. 이제부터 봄날이 시작된다.

이것은 두 짝, 권력에 관한 보고서이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당신은 스킨십을 좋아해

자르려는 자와 붙어 있으려는 자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같은 말을 쫑알대는 손가락에 권력이 붙는다

살을 섞으며, 당신을 사랑했다
뼈를 추리며, 당신을 증오했다

같은 동작을 세뇌시키는 당신은
뼈대만 남은 마지막 자존심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12월의 볼륨까지는 고백이 필요하다

온몸을 좌우로, 상하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든다
당신의 몸에서 땀방울이 떠나고 있다
권력의 잔고가 쌓인다
가슴에 왕을 만들 때까지 밥그릇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아령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
아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우리의 왕
당신의 권력에 군살 한 근 붙지 않는다

- ‘아령 또는 우리의 왕’ 전문


등단작 ‘아령 또는 우리의 왕’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명징한 현실 인식과 날렵한 진술이 오히려 알레고리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되고 있다”며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는 호평을 들었다. 이 시는 ‘아령=권력’이라는 전제로 시작된다. 권력의 속성을 아령과 살을 빼려는 당신을 통해 보여준다.

권력을 소유한 당신은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스킨십을 좋아”한다. 그리고 “같은 동작을 세뇌”시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들려 한다. 당신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자르려는 자”, 즉 사용자의 속성이다. 반면 “붙어 있으려는 자”는 “뼈대만 남은 자존심”으로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다. 사랑과 증오가 교차한다.

아령, 즉 권력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시가 무얼 말하려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12월의 볼륨”은 임금협상, “뼈를 추리”는 것은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첨탑 농성이다. 회사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당신이 군살 하나 없는 몸을 만들기 위해 흘리는 땀은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다. 자칫 빠지기 쉬운 알레고리나 구호를 아령이라는 사물을 통해 잘 극복하고 있다.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시를 쓰겠다고 27년 다닌 회사를 박스 한 개에 포장했을 때” 남편이 “나를 왕비처럼 대접하겠다”고 했다면서 “밥 먹고 잠자는 일 빼고는 시를 읽고 썼”고 했다. “석류를 맹꽁이라고 부르기 위해 맹꽁이 울음소리를 만져”(이하 ‘석류’)본다는 시인은 “석류를 흠모하면 석류가 삭제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시를 흠모하면 시가 삭제된다. 문장을 털어내면 결국 진정성만 남는다.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김분홍 지음. 파란 펴냄. 140쪽/1만원.

[시인의 집]쓰러진 곳은 목적지가 아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