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부동산대책이 더 필요하다[광화문]

머니투데이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2020.08.0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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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원들이 '전세의 월세전환이 나쁜 현상이냐'고 했다가 융단폭격을 맞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갭투자(전세끼고 주택 매입)가 많아서 월세 전환이 많지 않을 것이란 웃픈 해명을 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월세로 돌릴려면 전세금을 내줘야 하는데 갭투자한 사람들이 단기간에 그런 목돈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여당 의원들 중에선 특히 윤준병 의원의 글이 문제가 됐다.

"전세제도는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운명을 지닌 제도다. 미국 등 선진국이 다 그렇고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 전세 소멸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전세가 자연스럽게 소멸될까. 전세는 우리나라와 몇몇 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그가 말하는 미국 등 선진국에는 있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없었으니 소멸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선진국이 사라졌으니 우리도 사라질 것이란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개화기에 생겼다는 전세가 국민소득 3만불이 된 지금도 전체 임대차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윤 의원은 '10억 아파트에 5억 대출자는 월세사는 사람이다'라고도 했다. 은행에 이자 내는 월세라는 주장이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우리 집 중에 안방만 내꺼고 나머지는 다 은행거야. 내년이면 욕실 정도까지는 내께 될거야." 한때 이런 유머가 유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주변의 부러운 눈길에 대응하는 농담일 뿐 그 사람이 진짜 월세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 논리라면 그 집의 재산세는 집주인이 내야 할까, 은행이 내야 할까.​

#전세는 집값이 오른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제도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10억원 짜리 집을 5억원만 내고 내집처럼 쓰라고 하는게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세입자한테 5억원을 무상으로 빌려 주는거나 마찬가지니 그럴만 하다. 세입자는 월세도, 세금도 내지 않고 2년간(앞으론 4년) 살 수 있다. 우리는 이 현상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집주인 입장에선 5억원을 세입자한테 무상으로 준게 아니라 5억원을 무이자로 빌려 집을 산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집이 몇년 후면 12억원이 된다. 집주인도, 세입자도 윈윈(Win-Win)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집주인은 전세를 줄 경제적 유인이 없다. 실제로 주택경기가 안좋았던 2010년 초중반 전세 비율은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보였다. 2008년 55.0%였던 임대차 시장에서의 전세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10년 50.3%로 떨어진다. 주춤하던 집값이 급반등했던 2012년까지는 50.5%로 소폭 반등하다 집값이 하락 또는 횡보한 2014년까지 다시 45%로 계단식으로 하락했다. 그때 전세와 월세 비중이 역전됐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의 감소는 촉진될 수밖에 없다. 갭투자는 줄어들고 집주인은 자본수익(집을 팔아서 얻는 이익) 대신 운용수익(월세)을 높이는게 경제적 선택이다. 반면 무주택자는 집값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주택을 구매를 미루고 전세를 더 찾는다. 전세난의 심화다. 집값이 오르면 집값대책, 집값이 안오르면 전세대책을 반복해 온 것이 부동산 정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금리도 전세와 월세의 중요한 변수다. 금리가 떨어지면 집주인은 당연히 월세를 선호한다. 하지만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올해 갭투자가 오히려 더 활발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전세의 존립 근거는 역시 집값이라는 얘기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세가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이라고, 임대차 시장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대차3법으로 전세 소멸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임대차3법은 분명 월세 전환을 가속화시킬 기폭제다. 정부 해명처럼 갭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목돈이 없어 전세금을 내주지 못한다면 일부라도 월세로 돌리려 할 것이다. 세금 폭탄(7·10 대책), 공급 확대(8·4 대책)로 보유세는 늘어나고 집값은 오르지 않으면 월세 전환 속도는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임대차3법은 올 여름을 휩쓴 부동산 대책 중 가장 급하게 추진됐다. 여당 관계자조차 '갑톡튀'(갑자기 톡 튀어나온) 법안이었다고 말한다. 세입자의 권리 강화가 필요하고 전세의 부작용도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지금 정부와 여당이 해야할 일은 '월세 찬양'이 아니다. '월세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명도 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없다.

월세에 대한 세입자들의 두려움은 현실이다. 월소득에서 임차료가 차지하는 비중인 RIR(Rent Income Ratio)는 계속 오르고 있다. 수도권은 다시 20%에 도달했다.

임대차3법이 바꿔놓을 임대차 시장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이미 전문가들은 '착한 월세'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23번째 대책이 이 정부의 마지막 부동산대책이라고 말하지만 한번의 대책은 더 필요하다.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사진=인트라넷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사진=인트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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