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둑 무너지며 순식간 악몽"…복구나선 주민들 "비 더는 안돼"

뉴스1 제공 2020.08.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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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이천 율면 산양저수지 인근 주민 중장비 동원 복구작업
피해 주민들 체육관 등서 머물러…비내리면 작업 못해 걱정

경기 이천시 율면 산양1리 소재 산양저수지에 기습적인 폭우로 둑이 무너진 가운데 4일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빨간원은 원래 둑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무너져 없어진 모습.© 뉴스1 유재규 기자경기 이천시 율면 산양1리 소재 산양저수지에 기습적인 폭우로 둑이 무너진 가운데 4일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빨간원은 원래 둑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무너져 없어진 모습.© 뉴스1 유재규 기자


(이천=뉴스1) 최대호 기자,유재규 기자 = "정말 악몽 같았습니다. 복구도 해야 하는데 제발 더는 비가 안 내리길 바랄 뿐입니다."

4일 오전 경기 이천시 율면 산양1리의 산양저수지 인근 한 전원주택. 주인 김모씨(65·여)는 흙탕물에 젖은 가재도구 등을 마당 한 곳으로 연신 옮겨 놓고 있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던 그는 "비가 더 오면 안 되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 집은 산양저수지 붕괴로 인해 범람한 산양천 흙탕물 파도에 침수 피해를 입었다. 무너진 담장과 곳곳에 널브러진 벽돌 등은 당시 '수마'의 위력을 짐작하게 했다.

산양저수지는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만큼 거센 폭우가 쏟아져 내리던 지난 2일 오전 7시20분께 둑 일부가 침식되며 붕괴했다. 저수지 아래 저지대 마을 주민들은 이날 자연의 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김씨는 "집채만한 파도에 주차된 승용차 3대와 비닐하우스 2동이 순식간에 떠내려 갔다"며 "사흘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정리했는데도 정말 (할 일이)끝이 없다. 아직도 멀었는데 비가 또 내릴까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산양1리에서는 11가구가 수해를 입었다. 이들을 포함해 산양저수지 붕괴로 인해 피해를 본 주민은 모두 120여명(56세대)다.

수해를 입은 주민들과 수해 우려 지역 주민들 대부분은 자녀 집이나 율면체육관, 인근 중·고교 체육관 등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시설로 거처를 옮긴 상태다.


수해를 당한 마을을 둘러보는 산양1리 주민들.© 뉴스1 유재규 기자수해를 당한 마을을 둘러보는 산양1리 주민들.© 뉴스1 유재규 기자
4일 오전 비가 그치자 주민들은 복구를 위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수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마을에 깔린 도로는 흙길로 변해 있었고, 무너져 내린 담장과 창고 건물 등은 잔해로 뒤엉켜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주민들이 함께 공유하며 소통했던 정자(亭子), 체육관, 경로당 등 공공시설 또한 제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주민들은 '지옥' '전쟁통의 폐허' 등의 말을 내뱉으며 탄식했다. 한 주민은 망가진 집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연해했다.

복구작업을 위해 먼 곳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자녀들도 있었다. 울산, 밀양 등 각 지역에 흩어져 살던 9남매는 이날 부모의 집을 찾아 한창 복구 작업을 돕고 있었다.

9남매 중 넷 째인 조모씨(50대·여)는 "진흙 청소를 위해 고압 세척기를 서울에서 직접 사왔다"며 "부모님 걱정에 직장도 쉬고 한걸음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 연세가 올해 87세이신데 집안으로 몰려오는 흙탕물을 피해 지붕으로 피신하던 중, 발이 으스러지는 부상을 당했 수술을 받고 있다"며 마음 아파했다.

산양1리 이장 이종근씨가 지난 2일 산양저수지 둑 붕괴로 마을에 물이 차올랐던 당시 상황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재규 기자산양1리 이장 이종근씨가 지난 2일 산양저수지 둑 붕괴로 마을에 물이 차올랐던 당시 상황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재규 기자
복구작업은 이렇다할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전날(3일)에도 비가 내린 탓에 이날이 사실상 첫 복구작업이었다.

복구작업은 주민들이 집안으로 쓸려 들어온 나뭇가지와 자갈, 그리고 더이상 쓸 수 없게 된 가전제품 등 가재도구들을 밖으로 내놓으면 시에서 수거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산양1리 이장 이종근(65)씨는 "이천시에서 포클레인 5대, 덤프트럭 1대를 지원해 우선 복구작업 중"이라며 "오후께 각종 자재더미를 치우기 위해 집게차 1대와 덤프트럭 3대를 더 추가 투입해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이 산양저수지가 만들어진 이래 두 번째 둑 붕괴"라며 "오는 8일 마을주민 회의를 통해 산양저수지와 관련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1972년에 한번 둑이 터졌을 때, 그때는 더 심했다. 위험을 머리에 지고 사는 듯한 기분"이라며 "제발 비가 더 오지 않기를 소원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총 길이 126m, 높이 10m에 달하는 산양저수지는 1966년 농업용으로 활용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둑은 주민들에 의해 구축됐다. 저수량은 약 6만톤으로 마을주민들의 논과 밭 곳곳에 필요한 물을 공급한다.

4일 경기 이천시 율면 산양저수지 둑이 지난 2일 새벽에 내린 폭우로 무너져있다. 2020.8.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4일 경기 이천시 율면 산양저수지 둑이 지난 2일 새벽에 내린 폭우로 무너져있다. 2020.8.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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