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과수화상병 상처 아직인데" 폭우에 시름 깊어진 농심(農心)

뉴스1 제공 2020.08.0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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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산척면 논?밭 유실되고 침수…피해 광범위
"화상병으로 나무 뽑아내니 산사태로 피해 커져"

토사물로 덮여 작은 운동장처럼 변해버린 논 © 뉴스1 김용빈 기자토사물로 덮여 작은 운동장처럼 변해버린 논 © 뉴스1 김용빈 기자


(충주=뉴스1) 김용빈 기자 = "사과나무 뽑아 땅에 묻은지 얼마나 됐다고. 죽으라는거지 뭐. 아이들만 아니었어도…."

4일 오전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한 밭. 나흘째 이어진 폭우로 힘없이 쓰러진 깻잎을 바라보는 농민 김기영씨(54)의 얼굴은 시름에 잠겼다.

깻잎은 빗물에 쓰러지고 휩쓸려온 토사에 잠겨 이파리 끝만 간신히 드러나 있다. 밭 중간에는 토사가 휩쓸려 내려가면서 긴 물골이 생겼다.



그에게 이런 시련은 처음이 아니었다. 불과 한달 전 사과나무 2000그루를 땅에 묻었다.

최근까지 충주지역을 휩쓴 과수화상병에 감염된 탓이었다.



과수화상병은 나무가 불에 그을린 것처럼 말라 죽는 병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 감염 과수를 매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과수화상병에 폭우까지 이어지면서 김씨의 1년 농사는 엉망이 됐다.

자갈과 모래에 반쯤 묻혀버린 사과 나무 © 뉴스1 김용빈 기자자갈과 모래에 반쯤 묻혀버린 사과 나무 © 뉴스1 김용빈 기자
김씨는 "사과나무를 뽑아 매몰하고 나니 비가 쏟아져 밭작물까지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 정도면 사람 죽으라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다시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화상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땅이 있어도 다시 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만 아니면 다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과수화상병으로 동네 사과나무가 다 뽑힌 상황이어서 산사태 등 폭우피해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사과나무는 비탈면에 심어야 고품질의 열매가 달린다. 하지만 최근까지 과수화상병으로 동네 사과나무 대부분이 매몰되면서 비탈면은 맨땅으로 변했다.

김씨는 "사과나무들이 비탈면 땅들을 다 붙잡고 있었는데 나무를 다 뽑아놨으니 땅이 버틸 힘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했다.

산척면에는 230곳의 사과재배 농가가 있었는데 2년 사이 화상병 탓에 30농가로 줄었다.

김씨가 과거 사과나무밭이었지만 과수화상병으로 매몰하면서 맨땅으로 변해 산사태가 발행한 곳을 가르키고 있다.  © 뉴스1 김용빈 기자김씨가 과거 사과나무밭이었지만 과수화상병으로 매몰하면서 맨땅으로 변해 산사태가 발행한 곳을 가르키고 있다. © 뉴스1 김용빈 기자
김씨의 밭 피해는 그나마 적은 편이었다. 같은 마을의 다른 논과 밭은 토사가 휩쓸려 내려오면서 작은 운동장으로 변했다.

가을이면 수확할 벼들은 빗물에 눕고 토사에 묻혀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사과나무들도 절반이 자갈과 진흙에 잠겼다.

거대한 물골은 인삼밭의 중간을 관통해 시설물을 모두 쓸어갔다.

마을 주민들은 중장비 등을 동원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워낙 피해 규모가 광범위하고 토사물 양도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밭이나 논 보다는 도로와 하천 복구가 먼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논과 밭 복구는 언제 진행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충주에는 400㎜가 넘는 비가 내렸다. 청주기상지청은 중북부지역에 100~50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길어진 장마와 집중호우로 지반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어서 추가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인삼밭 중간으로 생긴 거대한 물골© 뉴스1인삼밭 중간으로 생긴 거대한 물골©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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