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옥새 파동 떠올린 '검사 활극'[광화문]

머니투데이 진상현 부장 2020.08.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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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밌네요"

2016년 3월. 평소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다른 부서 후배가 이렇게 말을 건넸다. 얼마 전 있었던 김무성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대표의 '옥새 파동' 얘기였다. 당시는 정치부 소속으로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의 막바지 공천 작업을 취재하고 있던 때다. 새누리당은 친박(친 박근혜), 비박(비 박근혜)으로 나뉘어 공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 지도부의 다수를 차지한 친박이 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휘두르는 칼날에 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은 속수무책이었다. 김 대표를 지지하는 비박계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논란이 된 5개 지역구를 남기고 김 대표가 움직였다.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승인할 수 없다며 최고위를 열지 않고 부산 지역구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이른바 '옥새 투쟁'이었다. 김무성 대표가 부산 영도다리에서 고뇌하는 사진은 다음날 거의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옥새 갖고 튀어라' '옥새의 후예' '옥새런' 각종 패러디와 합성 사진까지 등장했다. 집권 여당 당 대표가 공천안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도주하는 장면은 공천 내내 계속됐던 친박 비박 간의 진흙탕 싸움과 오버랩 되며 막장 공천의 '정점'을 찍었다.

4년도 더 된 이 일을 떠올린 것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벌어진 '검사 활극'을 보면서다. 지난 29일 '검언 유착' 수사의 피의자인 한 검사장은 입장문을 내고 수사팀장인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일방적인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 있는 한 검사장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이뤄진 직후다. 한 검사장은 자신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려는 순간 정 부장검사가 소파 건너편 탁자 너머로 몸을 날려 자신의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몸 위로 올라탔다고 전했다. 정 부장검사가 밀어 넘어지게 했고 몸 위를 타고 올라가 팔과 어깨를 움켜지며 얼굴을 눌렀다는 것이다. 정 부장검사는 압수물 삭제 등을 우려해 휴대폰을 빼앗는 과정에서 한 검사장이 완강히 거부해 실랑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어느쪽 얘기가 맞든 압수수색에 나선 검사와 당한 검사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막장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 부장검사는 이날 몸싸움의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병실에 누워 주사바늘을 꽂고 있는 검사의 모습은 또다른 '비아냥'으로 이어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과거 거짓 뎅기열 인증샷을 올렸던 가수 신정환과 비교하기도 했다.



물론 다 명분이 있을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가치를 위해 온 몸을 불살랐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많은 국민들의 눈에는 잘잘못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한심해 보일 뿐이다. 그리곤 한줌 남았을 신뢰를 거둔다.

'옥새 파동' 이후 새누리당은 그 해 총선에서 낙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패배했다.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올해 21대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 '4연패'를 기록중이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여러 악재가 있었지만 '옥새 파동'이 국민들에게 준 막장 이미지도 긴 내리막길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정당이나 검찰 모두 국민들의 신뢰가 있어야 제대로 설 수 있다. 그나마 정당을 불신하면 다른 정당을 선택하면 되지만 검찰은 다르다. 대안이 없다.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지만 보완하는 것이지 검찰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제대로 서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한다. 형사 사법의 정의도 없고 국법 질서도 바로 서기 어렵다. 검찰 스스로도 국민이 아닌 권력 앞에 줄을 서는 흑역사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여권은 검찰 개혁을 위한 진통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급기야 검사들간에 활극이 벌어지는, 그래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불신 받는,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우리의 검찰은, 우리의 검찰 개혁은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2016년 옥새 파동 떠올린 '검사 활극'[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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