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산업은행은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HDC현산이 요구한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에 대한 재실사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수많은 M&A(인수합병)을 경험했지만 당사자 면담 자체가 조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HDC현산 측의 인수 의지에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채권단은 이 회장과 정몽규 HDC현산 회장 회장이 알려진 것 외에 추가 회동이 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최 부행장은 "이전에 두차례 이 회장과 정 회장이 만난 적이 있다"며 "산업은행에서 코로나19(COVID-19)에 대한 영향을 감안해 (계약) 조정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놨고, (계약당사자 간) 만남을 통해 협상에 응해달란 기본적인 수준의 요구를 했다"고 공개했다.
대표 간 두 차례 만남에도 HDC현산 측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지 않은 데 대한 채권단 내 실망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채권단은 기회가 될 때마다 HDC현산 측에 대면협상을 요구했지만 HDC현산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이 회장은 지난 6월 "60년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편지를 하냐, 만나서 얘기하면 되지"라고까지 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HDC현산에 대한 신뢰를 잃은 채권단은 현실적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어려워졌다고 본다. 이 때문에 채권단 관리 하에서 경영 정상화를 이룬 뒤 새 인수자에 매각하는 '플랜B'의 일부를 노출했다.
최 부행장은 "아시아나항공 영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동성 지원이나 영구채 주식전환 등 채권단 주도 경영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경영안정 후 LCC(저비용항공사) 분리 매각 등 구체적인 관리방안은 시장상황을 봐가면서 하겠다"고 했다.
영구채 외 다른 대출채권의 출자전환 여부나 규모, 금호산업 측의 감자 등 구체적인 플랜B의 내용에 대해선 "추후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재매각 시점과 관련해선 "시장여건이 허락한다면 재매각을 빨리 추진하겠다"며 "(매각 대상에는) 대기업그룹도 다 열어 놓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와 별개로 매각 무산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소송전에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래 파기의 책임이 HDC현산에 있기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금호산업과 산업은행 측은 (계약 무산과 관련해) 하등 잘못한 게 없다"며 "계약 무산의 모든 법적 책임은 HDC현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HDC현산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본인들의 책임은 본인들이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로 다른 판단으로 운명이 갈린 미국의 두 리테일 기업 사례를 들며 아시아나항공 마케팅에도 나섰다. 그는 "1945년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의 운명을 갈라놓은 사건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한 회사(몽고메리 워드)는 쇠락의 길을, 다른 회사(시어스)는 이후 30∼40년간 전 세계 리테일을 평정하는 대기업으로 거듭났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소매업체인 몽고메리 워드는 2차 세계대전 후 참전용사들이 실업자가 돼 공황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를 가능한 줄이는 경영 전략을 취했다. 반면 경쟁 업체였던 시어스는 은행 대출을 통해 교외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수요 증가에 대비했다. 이후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고 몽고메리 워드는 큰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