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믿음 깨고 '남 탓' 우리 기업 권리 찾아준 변호사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08.04 06:00
글자크기

[theL][2020 대한민국 법무대상/중재대상]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

왼쪽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 박은영 변호사(런던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와 유원영 변호사(미국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왼쪽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 박은영 변호사(런던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와 유원영 변호사(미국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


20년 전 유럽에서 체결된 계약과 관련해 분쟁이 생겨 홍콩에서 영국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어떨까. 20년이라는 시간도 문제지만 대륙을 넘나들며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일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신약 개발을 함께하던 외국 제약사와 돌연 분쟁이 생겨 중재 절차를 밟게 된 우리나라 제약사 A사가 이런 경우였다. 스위스 제약사 B사는 자기 잘못으로 신약 독점 판매권이 날아가자 A사 탓을 하면서 수천억원대 배상을 요구했다. A사는 절박한 심정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문을 두드렸고, 국제중재팀 박은영·유원영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아 승소 판정을 끌어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L)은 두 변호사가 끌어낸 이번 판정의 혁신성을 인정해 국제중재팀에 '2020 대한민국 법무대상' 중재대상을 시상했다.

유럽 계약 문제를 홍콩서 영국법으로 다퉈 이겨내
사건은 EU(유럽연합)를 겨냥한 신약 개발 사업에서 비롯됐다. A·B사는 서로 계약을 맺고 신약을 공동 개발해왔다. 개발에 성공하면 전 세계 시장을 나눠 각자 맡은 시장에서 판매 허가를 받고 수익을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신약 생산과 공급은 A사가 맡기로 했다.



신약 개발은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계약에 따라 B사는 EU 시장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가졌지만 신약을 유통·판매할 능력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B사가 따낸 판매 허가 기간은 그대로 만료됐다. 그러자 B사는 A사 탓을 하면서 신약을 제대로 팔았으면 얻을 수 있었던 금액 모두를 A사에서 받아내겠다고 했다. 결국 사건은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ICC)으로 넘어왔다.

이 사건은 시작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사건은 영국 법을 기준으로 진행됐고, ICC 중재는 홍콩에서 진행됐다. B사는 홍콩 입법원(국회) 의원으로 재직 중인, 현지에서도 손꼽히는 저명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다.

A사를 대리한 김앤장은 제약업계 전문인 영·미 변호사들과 팀을 이뤄 변론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사실관계를 밝혀나갔다. 김앤장은 B사가 판매권을 잃게 된 것은 B사의 잘못이며, A사는 B사의 판매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중재판정부에 설명했다. 이에 기초해 B사가 계약관계를 먼저 깨놓고 잘못을 A사에 미루고 있음을 주장해 중재판정부로부터 만장일치 승소 판정을 받아냈다.


왼쪽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 유원영 변호사, 박은영 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왼쪽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 유원영 변호사, 박은영 변호사./ 사진=이기범 기자
"우리나라 로펌, 20년 사이 눈부신 성과…우리 기업들이 믿어줘야"
소회를 묻는 질문에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특별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변호사는 “클라이언트였던 A사 입장에서도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건지 명확하지 않아 매우 어려웠다”며 “유럽부터 미국, 홍콩, 영국까지 엮인 사건을 잘 풀어내 성공을 거둬 보람이 컸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국제무대에서 한국 법조계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박 변호사는 “세계적으로 서울이 유명한 중재지로 인정받고 있다. ‘서울에서 중재를 하면 페어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 중재 변호사들도 그런 인정을 받고 있다. 놀라운 성취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그 전까지 중재 사건은 대부분 영미계 로펌들이 주도했다. 한국 로펌들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짧은 역사 때문에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한국 로펌들의 국제중재 능력과 역할이 저평가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한국 기업의 의사와 주장을 국제중재에서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한국 로펌”이라며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미래는 밝다. 전문성 있는 우리 로펌들과 분쟁이라는 산을 넘다보면 국제시장에서 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유 변호사는 “중재 사건은 한 번 맡으면 1~2년은 갈 정도로 호흡이 길다. 그러다 보면 생활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런 힘든 과정을 겪고 승소했을 때 보람이 크다”며 “이번 사건 승소와 수상이 앞으로 일을 해나가는 데 원동력이 될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서울이 국제중재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