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돈·권력'의 승자와 패자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2020.08.0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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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돈·권력'의 승자와 패자


"좋은 사람이 되지 마라.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돼라. 설득은 말로 하는게 아니라 힘으로 하는 거다. 승자가 모든 걸 갖는다. 패한 뒤에 좋은 이미지가 무슨 소용 있나."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다 갑자기 계열사 주인이 바뀌고 잘못된 투자로 수백억 원의 돈을 날려도 아버지의 호통과 숟가락 던지기 한 번이면 끝난다. 부모, 형제, 자매, 며느리, 사위 가리지 않고 이익이 되면 순식간에 손을 잡고 해가 되면 매몰차게 그 손을 내친다.
 
과거 인상 깊은 재벌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지만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세상'이 현실에서도 등장하곤 한다. 드라마적 요소를 빼도 한국 경제사의 큰 이슈를 되짚어보면 재벌가(家) 현실과 적잖이 오버랩된다. 물론 여염집에서도 크고 작은 부모 유산을 둘러싸고 가족끼리 등을 돌리거나 끔찍한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매주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고 하루에 4~5㎞ 이상 걷는다는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은 "정말 사랑한다"는 첫째딸이 자신에게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한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자세한 집안 내막이야 알 길이 없지만 둘째 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으로의 승계를 공식화한 직후의 일이라 잘잘못을 떠나 이유는 짐작이 간다.
 
조 회장은 "경영권에 욕심이 있는 것이라면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을 한순간도 해본 적이 없다. 돈에 관한 문제라면 이미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증여했다"고 했다. 아버지 역시 '권력'(경영권)과 '돈'을 딸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우려(?)하는 포인트로 지목했다.
 
인생사 모든 욕심의 최종 종착지는 돈과 권력이다. 둘 셋 또는 그 이상으로 나누기 어려운 것도 바로 돈과 권력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진그룹은 큰딸이 적진에 투항해 가족에게 총을 겨누는 곤혹스런 상황이다. 조원태 회장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 주변인의 전언에 따르면 그래도 가족이라 미워하면서 걱정도 한다고 한다.
 
연초 세상을 떠난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산 상속 협의가 최근 마무리됐다고 하는 롯데그룹 역시 '부자의 난' '왕자의 난' 소리를 들어가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금호, 두산, 현대 등 형제·가족경영의 모범이 순식간에 '난'(亂)으로 탈바꿈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물론 꼭 '피가 돈과 권력보다 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핏줄을 너무 챙기다 불행이 싹트는 경우도 많다. 혹자는 집안싸움의 '의문의 1승' 효과도 거론한다. 권력이나 돈을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다툼에서 치부가 폭로되고 그게 주주와 사회의 감시로 이어져 경영시스템이 개선되거나 투명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논리다. 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역시나 재벌가의 분쟁을 놓고 "있는 집안이 더 한다"고 정색하면서도 '막장요소'라도 발견되면 관음적 시선으로 은근히 즐길 뿐이다. 몸담고 있는 직원,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도 집안일 파장에 잠시 혼란스럽지만 곧바로 승패가 어떻게 될지,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는지 주판알을 한 번쯤 튕겨보는 게 일반적이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켜야 하는 사람과 욕심을 부려야 하는 사람.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억지로 지키려고 하면 잃고 억지로 욕심을 부리는 만큼 상처도 커진다. 차고 넘침이 문제지 지키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사는 삶이 과연 옳은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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