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 적자내던 2차전지, 15년전 구본무는 포기하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최민경 기자 2020.08.0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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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LG제공, 머니투데이DB/사진=LG제공, 머니투데이DB


LG화학 (370,500원 ▼8,000 -2.11%)이 올 2분기에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고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기술경영 '뚝심 리더십'이 재조명 받고 있다. LG화학은 2차전지 사업을 시작한 지 28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이 부문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흑자로 돌아섰다. 구 전 회장은 2000억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무 회장, 영국 출장길에 2차전지 샘플 가져와 개발 독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02년10월 구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사진=LG제공, 머니투데이DB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02년10월 구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사진=LG제공, 머니투데이DB


LG화학은 원래 1990년대 들어 2차전지 연구개발을 준비해오다 1995년에 본격적으로 2차전지 독자개발에 착수했다. 이때만 해도 2차전지 사업에서 언제쯤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담당 직원들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본무 전 회장의 지원은 흔들임이 없었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던 구 전 회장은 유럽 사업 점검을 위해 영국에 들렀고, 그곳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닌 충전을 통해 몇번이고 반복해 쓸 수 있는 2차전지 사업에 매료된다. 구 전 회장은 이때 2차전지 샘플을 가져와 당시 럭키금속에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수년간의 연구에도 불구, 가시적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일본 선발업체들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도 버거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그럴 때마다 직원들을 격려했고, 5년간의 연구 끝에 1997년 사명을 바꾼 LG화학이 소형전지 파일럿 생산에 드디어 성공한다. 바로 당장 양산하기에 품질은 떨어졌지만 구 전 회장은 담당 직원들 모두를 격려 차원에서 해외 여행을 보내줬다는 후문이다.

이후 LG화학은 양산체제 준비에 들어가 1997년 11월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출시한다. 첫 시제품은 당시로선 세계 최대 용량(1800mAh)이자 세계 최경량(150Wh/kg)이었다.

2000억 적자로 "사업 포기하자"고 건의해도 끝까지 사업 밀어줘
하지만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급기야 2001년 11월 최고경영진 회의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건의까지 나왔다. 워낙 진척이 더디고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이 사업을 가장 견실한 계열사인 LG전자에서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구 전 회장은 이런 의견들에 휘둘리지 않았다. 구 전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봐야 한다"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LG화학이 끈기를 갖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구 전 회장의 이런 혜안은 4년 뒤에도 또 한차례 위기를 맞는다. 2005년 당시 LG화학이 2차전지 사업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본 것이다. 그래도 구 전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공할 날이 올 것이고 여기에 우리 미래가 있다"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오너의 결단이 없었으면 LG화학 배터리의 흑자 전환은 상상조차 힘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 전 회장은 LG화학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진출에도 때를 기다리는 리더십을 여지 없이 보여준다. LG화학이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11년차를 맞는 2010년 미국 홀랜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기공하는 가하면 2011년에는 충북 오창공장도 준공한다. 2015년 중국 난징공장도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구 전 회장은 이런 배터리공장 관련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할 만큼 이 사업에 남다른 믿음과 애정을 보였다.

현재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체 1위로 우뚝 섰다. 시장조사기관 SNE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LG화학은 누적 사용량 7.8GWh(기가와트시)로 점유율 24.2%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CATL(22.3%), 일본 파나소닉(21.4%)을 여유있게 따돌린 수치다.

LG화학은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데 지난해 말 기준 수주 잔고만 150조원에 달한다.

올해 말까지 총 배터리 생산능력은 100GWh 확장할 계획인데 이는 1회 충전시 380Km를 주행하는 고성능 전기차 167만대를 움직이는 양이다.

배터리가 일냈다…매출비중도 40% 넘기며 미래 먹거리 존재감 '과시'
특히 LG화학의 배터리 실적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지난주 발표한 2분기 영업이익 5716억원 중 27%인 1555억원이 배터리로 벌어들였다. 구 전 회장의 독려와 믿음으로 LG화학은 이렇게 올 2분기에 전기차 배터리 매출 2조8230억원, 영업이익 1555억원으로 사상 최대실적을 올렸다. 전체 매출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대인 40.7%로 껑충 뛰었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은 불과 2년 전 만해도 전체 매출에서 20%에도 못 미쳤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2018년 4분기 '반짝 흑자'를 낸 이후 다시 6개 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폴란드 공장 수율이 개선됐고, 공장 가동율도 정상 수준을 회복하고 있어 3~4분기에도 꾸준한 흑자가 기대된다.

차동석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신규 라인 증설 및 추가 생산능력 확대도 순조로워 출하량은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자동차 전지 사업이 구조적 이익 창출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은 큰 의미"라고 말했다.

LG화학, 시총 40조원 돌파…"하반기 더 간다" 목표가 80만원도
지난 2010년 고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시에서 진행된 'LG화학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기념시삽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피트 혹스트라 하원의원, 커트 다익스트라 홀랜드시 시장, 구본무 LG 회장, 제니퍼 그랜홈 미시간주 주지사,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토마스 스티븐슨 GM 부회장, 그렉 메인 미시간경제개발협회 최고경영자(CEO)/사진=머니투데이DB지난 2010년 고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시에서 진행된 'LG화학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기념시삽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피트 혹스트라 하원의원, 커트 다익스트라 홀랜드시 시장, 구본무 LG 회장, 제니퍼 그랜홈 미시간주 주지사,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토마스 스티븐슨 GM 부회장, 그렉 메인 미시간경제개발협회 최고경영자(CEO)/사진=머니투데이DB
LG화학이 호식적 발표 이후 지난달 31일 주가는 7% 넘게 오른 56만8000원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40조965억원으로 처음으로 40조원을 돌파했다.

LG화학이 컨퍼런스콜을 통해 하반기에도 전기차 배터리 부문이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 밝힌 것도 시장 전망을 밝게 한다. 증권가는 잇따라 목표가를 올렸는데 BNK 투자증권이 80만원을, 미래에셋대우가 78만원을 외치는 등 대부분 70만원 이상을 제시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0년 2분기 강한 주가 반등에도 불구하고 고평가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3분기 전지 부문은 유럽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 확대로 2분기 대비 25%의 외형성장과 함께 1900억원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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