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인플루언서·기자…대한민국은 악플과의 전쟁中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김남이 기자, 정한결 기자, 이태성 기자 2020.08.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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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기획]악플 전쟁-上

연예인 기사 댓글 막았지만, '악플' 고소는 더 늘어났다
유튜버·인플루언서·기자…대한민국은 악플과의 전쟁中


"선처없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악플러들 계속 잡을 겁니다."





연예인 김희철이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지난 22일 고소장 제출 사진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이틀 뒤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그동안 악플은 김희철의 경우처럼 연예인이 감당해야하는 '유명세'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악플의 비난 수위가 심해지고 유튜버나 SNS 스타, 인플루언서, 기자 등 불특정 개인까지 악플에 시달리게되면서 광범위한 사회 문제로 자리잡았다. 피해자들도 하나둘 고소에 나서기 시작했다.



5년 사이 두 배 늘어난 악플 고소…올해는 더 늘었다

유튜버·인플루언서·기자…대한민국은 악플과의 전쟁中
31일 경찰청에 따르면, 악플을 신고했을 때 적용되는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신고 건수는 2014년 8880건에서 2019년 1만6633건으로 87% 급증했다. 5년 만에 약 2배 수준이 됐다.


이렇다할 악플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 사이 연예 기사에서 댓글창 서비스를 아예 닫아버렸다.

그러나 악플 범죄를 줄이지는 못했다. 악플러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카페, SNS 등으로 숨어들어갔다. 이곳에서는 연예인이 아닌 비연예인도 타깃이 됐다. 게시판이나 기사에 언급된 일반인의 개인 계정을 찾아들어가 악플을 남기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갑자기 가족 안부는 왜 물어? 곧바로 경찰서 달려갔지만…"

과거에는 비연예인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를 진행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본인이 직접 증거를 모아 경찰서로 가져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30대 기자 A씨는 지난해 악플을 신고하려 경찰서를 찾았다가 결국 고소장을 접수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A씨는 "기사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가족을 비하하는 댓글이 있어 곧바로 경찰서에 갔는데 회사 변호사를 통해 고소장을 접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구글로 고소장 양식까지 검색했지만 복잡하게 느껴져서 결국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같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반인들 역시 고소에 나서고 있다. 연예인 기사 댓글 금지에도 불구하고 올해 1~6월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신고 건수는 809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늘었다. 일반인들의 고소가 상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인규 법무법인 정솔 변호사는 "예전에는 연예인이 주로 악플에 대해 고소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악플이 달릴 경우 참지 않고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악플방지법' 줄줄이 폐기…고소·고발 말고는 해결책없나

지난해 국회에서는 '악플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관련 법 개정안이 쏟아졌지만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줄줄이 폐기됐다.

악플방지법의 골자는 인터넷 댓글 준실명제다. 댓글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위축과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위헌 판결이 났지만, 대신 아이디 전체와 IP(인터넷주소)를 공개하는 준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준실명제가 도입되더라도 악플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의 장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처벌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제도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사업자들의 지속적인 캠페인과 이용자들의 댓글 정화 운동 강화가 장기적으로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악의적이고 집단적인 악플은 처벌 수위를 더 높이고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주현, 김남이 기자

포털 댓글창 막히자 SNS·커뮤니티로 옮겨간 악플러들
유튜버·인플루언서·기자…대한민국은 악플과의 전쟁中


"내년이면 상장폐지인데 고졸되면 시집 다갔노 ㅉㅉ"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모씨가 지난 26일 모욕죄로 고소한 악성 댓글(악플)의 일부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기재된 해당 악플은 조모씨의 나이와 학력, 성별에 대한 비방을 담고 있다.

악플에도 풍선효과가 일고 있다. 연예 기사 댓글 서비스가 각종 포털에서 종료되고 포털의 대대적인 댓글 정책 개편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악플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카페 등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포털서 사라진 악플…어디로?

앞서 포털 다음은 지난해 10월, 네이버는 3월, 네이트는 지난 7일 연예 댓글을 폐지했다. 악플에 시달린 연예인들이 줄줄이 피해를 호소하고 일부는 극단적인 선택에 나서자 내린 결정이었다.

연예 댓글 폐지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동원해 욕설 댓글을 자동으로 가리는 등 전반적인 뉴스 댓글 서비스를 개편하기도 했다.

그 결과 포털에서 악플은 줄었다. 네이버는 지난 21일 규정을 위반해 삭제된 악성 댓글 건수가 6월 기준 1월 대비 63.3% 줄었다고 발표했다. 악성 댓글 노출이 줄어든 영향으로 같은 기간 비공감 클릭과 신고도 각각 21.5%, 53.5% 감소했다.

게시판, 카페, 인터넷 커뮤니티…악플 장소·대상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포털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악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조씨 사례처럼 일간베스트 등 각종 커뮤니티는 물론 카페, 유튜브 등으로 이동해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극성이다.

포털 댓글창이 사라졌지 악플러가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는 개인 SNS까지 찾아 악플을 달기도 한다. 배우 함소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SNS에 "아줌마 안 예뻐요"라며 외모를 지적하는 댓글을 공개하기도 했으며, 배우 한예슬 역시 SNS에 남겨진 외모 비하 악플에 대해 공개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유튜버·인플루언서·기자…대한민국은 악플과의 전쟁中
지난 6월 SBS는 공식 홈페이지의 시청 소감 게시판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자사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고정 패널인 배우 전소민을 향해 "런닝맨에서 퇴장시키지 않으면 가족이 매일 저주를 받을 거다" 등 악성 댓글이 난무하자 출연진 보호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다.

악플은 연예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A씨에 대한 악플도 각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A씨는 결국 "한 번 만진게 큰 죄냐" 등을 남긴 악플러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고, 경찰은 지난 28일 클리앙 등 웹사이트 4곳에 대한 서버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도 넘은 악플…해결책 마련은 언제

결국 피해자들은 A씨처럼 개개인이 법적으로 사태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룹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지난 22일 고소장을 공개하며 악플러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고, 그룹 워너원 출신의 강다니엘도 지난 28일 악플러에 대한 3차 고소에 나섰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해결책 마련은 지지부진하다. 가수 설리가 지난해 10월 극단적 선택에 나선 이후 국회에는 이른바 '설리법(악플방지법)'이 발의됐지만 줄줄이 폐기됐다.

정한결, 이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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