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드라마처럼 현지 제작사가 만든 킬러 콘텐츠도 제값을 주고 사들여 해외 곳곳으로 송출한다. ‘미스터 션샤인’을 만든 CJ ENM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5%를 지난해 11월 인수하기도 했다. 성장성이 큰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을 잡으려면 ‘한류 콘텐츠’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 콘텐츠 투자액은 매년 광폭으로 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K콘텐츠 확보를 위해 투자액을 3331억원 수준으로 확대한다. 2018년 920억원, 2019년 2481억원에서 더 늘었다.한국 시장에 진출한 2016년(150억원)과 견주면 4년 만에 투자 규모가 22배 커진 셈이다.
'메기'냐 '황소개구리'냐…넷플릭스의 두 얼굴
넷플릭스의 공격적 투자는 국내 미디어·콘텐츠 시장의 지각판과 생태계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넷플릭스와 글로벌 대형 OTT의 공습에 맞서려는 합종연횡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콘텐츠 제값받기 움직임도 한창이다. 전통적 ‘갑을 관계’인 플랫폼과 콘텐츠 업체의 관계 역전 현상도 넷플릭스가 가져온 변화다. 콘텐츠 수요와 제작비 증가로 콘텐츠 사업자와 저작권자의 협상력이 강화되고 있어서다. CJ ENM과 케이블 TV업체인 딜라이브간 채널 사용료 분쟁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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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발(發) 미디어·콘텐츠 생태계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중심의 질적 경쟁을 자극하는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외래종 포식자인 ‘황소개구리’처럼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교란하고 잠식할 것이란 우려가 교차한다.
콘텐츠 업계에선 넷플릭스를 타도해야 할 경쟁 상대가 아닌 국내 미디어 사업의 규모와 경쟁력을 키우는 상생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대체로 많다.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일일이 발품을 팔 지 않아도 해외로 콘텐츠를 수출하고, 감독과 배우를 알릴 수 있는 교두보로, 또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는 열악한 제작 생태계에 단비가 되고 있다”며 “미디어 산업이 굉장히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고 했다.
최근 넷플릭스와 제휴한 유료방송 1위 KT의 김훈배 커스터머신사업본부장(전무)은 “애플이 국내 시장에 진출할 때 ‘나라 팔아먹는다’는 얘기까지 있었지만 한국 스마트폰의 경쟁력이 생기는 효과가 있었다”며 “넷플릭스가 악영향만 끼치는 게 아니다. K콘텐츠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토종 OTT들도 경쟁을 통해 자생력이 생기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고경곤 한국 인터넷전문가협회 회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콘텐츠 제작사들이 넷플릭스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라는 말도 한다”고 전했다. 한류 콘텐츠가 만들어 내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정작 넷플릭스가 독식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은 “당나라 군대(넷플릭스)가 쳐들어오는 걸 모르고 신라·백제(국내 미디어기업)가 서로 싸우고 있는 꼴이다. 미디어 주권을 상실할 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