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발표된 2분기 실적도 부진했다. 영업이익은 3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9% 감소했고 매출액은 24.2% 줄었다. 경쟁사 LG생활건강의 2분기 영업이익이 3033억원인 것과 비교할 때 1/9 수준에 불과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설화수의 신제품 5세대 윤조에센스/사진=아모레퍼시픽
K-뷰티가 처한 이같은 위기는 아모레퍼시픽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따이공(보따리상)을 이용한 저비용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택한 LG생활건강의 '후'와 달리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위기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현지 백화점에 폭넓게 입점하는 전략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정공법'이긴 했지만 높은 비용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중국 화장품 시장의 가장 중요한 카테고리인 '럭셔리'에서 한방 화장품의 왕좌를 후에게 내주는 굴욕을 겪는다.
대표 브랜드 설화수가 맥 추지 못하는 가운데 중저가 브랜드(라네즈, 이니스프리 등)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치열한 경쟁에 사면초가가 됐다. 럭셔리와 더불어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고속 성장하는 카테고리인 더마코스메틱(피부과 화장품) 부문에서는 이렇다 할 브랜드를 진출시키지조차 못했다.
로레알이 일찍이 인수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비쉬와 라로슈포제는 중국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다급해진 에스티로더는 K-뷰티 브랜드 닥터자르트를 무려 2조원에 인수하고 나섰다. 앞서 CNP코스메틱스를 인수한 LG생활건강은 올해 초 독일 브랜드 피지오겔의 북미·아시아 사업권까지 인수해 더마 코스메틱 전쟁에 대비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아이오페라는 더마 콘셉트에 맞는 브랜드를 갖추고도 '더마 전쟁'에 합류하지도 못했다.
아이오페 비타민C 앰플/사진=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도 상반기 매출이 0.7%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되려 2.1% 늘었다. LG생건은 면세점을 제외한 모든 사업부문이 '코로나 불황'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로레알과 LG생건은 모두 M&A(인수합병)을 통한 외생적 성장으로 시장 트렌드에 맞춰 브랜드를 사들이며 글로벌 기업이 됐다.
결국 아모레퍼시픽의 실적 부진에는 코로나19 여파도 있겠지만 브랜드의 경쟁력 약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랫동안 스스로 육성한 자체 브랜드(설화수, 헤라, 아이오페, 라네즈 등) 전략을 고수했지만 글로벌 코스메틱 업계의 빠른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설화수가 1조원대 메가 브랜드로 버티고 있지만 글로벌 코스메틱 전쟁에서 승리하기에는 설화수 브랜드 하나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브랜드 전략 측면에서 설화수에 한정된 라인업과 브랜드력 저하, 중저가 브랜드의 위상 약화를 극복해야 한다"며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는 물론 국내 '후'와도 이제 어깨를 나란히 겨루기가 버거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브랜드 업체 대비 럭셔리 라인업이 특정 브랜드에 한정돼 있어 불안하다"며 "브랜드의 라인업 확충인 인큐베이팅(브랜드 육성)은 물론 적극적인 M&A를 포괄해야 할 것이며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소비시장의 격변기에 아모레퍼시픽은 전략적 선택에 따라 중장기 방향성이 크게 바뀔 수 있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