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계열사 매각하는 두산…M&A 흑역사 반복될까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2020.07.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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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두산그룹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내수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한 차례 변신한 후 2번째다. 또 다시 핵심 계열사를 모두 팔아버리는 두산그룹을 보는 재계의 시선은 어둡다.



30일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두산 (151,000원 ▲1,100 +0.73%)은 최근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위한 티저레터(투자안내서)를 배포했다. 매각 대상은 두산중공업 (17,520원 ▲40 +0.23%)이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 (8,560원 ▲120 +1.42%) 지분 36.27%다. 두산 모트롤BG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미국계 모건스탠리PE와 국내 PEF인 소시어스-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도 선정했다.

주력·핵심 계열사를 잇따라 매각하면서 두산은 3조원 이상 유동성을 마련하겠다는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솔루스 (17,530원 ▲560 +3.30%) 등 성장성이 높은 알짜 계열사까지 처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또다시 1990년대 사업 재편의 흑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산그룹은 외환위기 직후 그룹 성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구조를 전면 재편했다. 두산은 1986년 박승직 상점으로 출발해 맥주를 중심으로 김치, 음료, 의류 등 소비재 위주 사업으로 성장해왔다.

오비맥주 로고가 붙어있는 두산베어스 ./jpnews@osen.co.kr / 사진=지형준오비맥주 로고가 붙어있는 두산베어스 ./[email protected] / 사진=지형준
오비맥주, 종가집 김치, 코카콜라(두산음료), 처음처럼, 폴로 랄프로렌, 버거킹, KFC, 두산동아, 3M.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이 브랜드들이 IMF 직전까지는 모두 두산그룹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두산은 IMF 이후 내수시장에 치중된 그룹 포트폴리오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내수 소비재는 현금 창출력은 뛰어나지만, 그룹 미래 성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사업구조를 모조리 뜯어고쳤고, 현재 중공업 기업으로 거듭났다.

두산이 보유한 소비재 브랜드가 지금까지도 각 분야 1,2등을 굳건히 지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선택이다. 두산은 이들 브랜드 매각 자금을 토대로 적극 중공업 기업들을 사들였다. 기계와 발전 위주에 집중했다. 2007년 밥캣을 인수할 때는 5조원의 부채를 끌어다 쓰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은 '선택과 집중'이라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쏠림이 강했던 두산은 중공업, 건설 업황 따라 그룹 전체의 운명이 흔들리는 처지가 됐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건설, 중공업 업황이 악화됐고 그룹에서 지원사격한 자금은 두산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알짜 내수기업 몇개만 남겨뒀더라도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휘청댈 일은 적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번 구조조정 역시 두산이 세계적 탈원전 추세 속에서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2차전지, 인프라 투자 등 성장사업을 매각하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성장 전략을 짜면서 익숙하지 않은 신사업으로 자꾸 눈을 돌리는 것이 문제"라며 "두산도 보유하던 소비재 브랜드들이 모두 알짜였는데 돌이켜보니 너무 섣불리 매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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