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빗장 열었다...대기업 'CVC 보유' 허용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0.07.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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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가 ‘금산분리’의 벽을 허물어 대기업의 기업형벤처캐피탈(CVC) 보유를 허용한다. 대기업의 풍부한 유동성이 벤처투자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CVC 보유 허용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투자’ 업무만 허용하고, 총수일가 지분이 있는 기업과 대기업에는 투자를 금지한다. 외부자금 출자는 펀드 조성액의 40%까지만 허용한다.

대기업 돈, 벤처투자로 이어지도록
CVC 개념도/사진=공정거래위원회CVC 개념도/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정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1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겸 제30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홍 부총리는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이 설립한 ‘구글벤처스’는 우버 등 다수 투자 성공사례를 창출하는 등 CVC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며 “한국도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CVC는 대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로,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금융·산업간 상호 소유·지배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금지(공정거래법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한다. CVC는 기존 벤처캐피탈 형태인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나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로 설립할 수 있다. 등록(창투사는 중소벤처기업부, 신기사는 금융감독원), 최소자본금(창투사 20억원, 신기사 100억원)은 소관법상 규정을 준용한다.

자금조달·투자 ‘안전장치’ 마련
CVC 자금조달 및 투자 구조/사진=공정거래위원회CVC 자금조달 및 투자 구조/사진=공정거래위원회
금산분리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CVC는 일반지주회사가 지분을 100% 가진 완전자회사 형태로 설립하도록 했다. 대기업이 적은 돈으로 다수의 CVC를 설립해 계열사를 확장하고 지배구조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CVC의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한다.

CVC 도입 취지를 고려해 ‘투자’ 업무만 허용한다. 총수일가, 기업집단 내 금융 계열사는 CVC가 조성하는 펀드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다. 외부자금 출자는 펀드 조성액의 최대 40%로 제한한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총수일가가 지분을 가진 기업에는 CVC가 투자할 수 없도록 한다. CVC의 계열사, 대기업 대상 투자도 금지한다. 한국 벤처 활성화라는 취지를 고려해 해외투자는 CVC 총자산의 20%로 제한한다. 창투사·신기사 소관 법령에 따른 투자 의무도 동일 적용한다.

CVC는 출자자 현황, 투자내역, 특수관계인 거래 관계 등을 공정위에 정기적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는 제각각 소관사항을 조사·감독한다. CVC가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되는 요건을 충족할 경우, 편입 유예기간을 벤처지주회사와 동일한 10년으로 적용한다.

CVC 도입, 얼마나 될까?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30.   photo@newsis.com[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30. [email protected]
정부가 CVC 보유를 허용했지만 대기업이 행동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업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대기업이 벤처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CVC 규제 때문이 아니라 투자할 마땅한 기업이 없어서”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도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는 CVC 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각종 제한·감시를 무릅쓰고 CVC를 지주회사 내에 두려고 할지도 의문이다. 공정위는 지주회사에 제공하는 세제 혜택 등이 유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공정위가 이번 방안을 마련하면서 조사한 결과 7개 대기업이 “CVC 도입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총 6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18개가 CVC 도입 의향을 밝혔고, 이 가운데 대기업은 7개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수는 국회다. 정부는 연내 입법을 마무리한다는 목표지만 국회에서 적잖은 의견 충돌이 예상된다. 현재 CVC 보유 허용을 담은 법안은 총 8건 국회에 발의됐는데, 안전장치 여부·수준에 대한 의견이 제각각이다. 공정위는 “입법 과정에서 조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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