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려운' 조선에 통크게 양보한 철강업계…후판가격 인하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0.07.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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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현장 근로자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포스코지난 2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현장 근로자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포스코


철강·조선업계의 후판(선박을 건조할 때 쓰이는 두께 6mm 이상 철판) 가격협상 줄다리기가 철강업계가 '양보'하는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에 조선업계 못지 않게 철강업계도 힘든 상황이지만 일단 철강업계보다 조선업계 업황이 더 좋지 않기 때문이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최근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와 올 상반기 조선 후판 가격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 결과 현대제철은 조선업체들의 실적 악화를 반영해 후판 가격을 톤당 3만원씩 내리기로 했다.



조선용 후판은 1년에 두 번 가격 협상을 한다. 상반기 가격 협상은 연초부터 시작했지만 올해는 조선사 업황 부진과 철광석 가격 상승으로 조선사와 철강사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협상이 7월까지 지연됐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 저가의 조선용 후판이 대량 수입됐고, 수주 부진으로 수요보다 공급량이 많아지면서 철강업계가 손을 들었다.



올 상반기 조선 3사의 수주 목표 달성률은 현대중공업그룹이 12%, 대우조선해양 19.8%, 삼성중공업 6%에 그쳤다. 2분기 영업이익도 지난해 대비 크게 악화됐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900억원대 적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줄어든 8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후판가격이 톤당 3만원 인하되면서 톤당 70만원대 초반이었던 조선용 후판 가격은 60만원대로 내려가게 된다. 이는 조선업이 호황이던 2011년 110만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철강업계에선 수익을 남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현대제철과 달리 포스코는 아직 올 상반기 조선 후판 가격 협상이 끝나지 않았지만 가격 인하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업계에선 경쟁사인 현대제철이 가격을 내리고 일본산 조선용 후판 유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포스코도 더이상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와 협상은 마무리 단계"라면서 "현대제철이 가격을 내린 이상 포스코도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사 수주 부진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많기 때문에 공급처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저가의 일본산 조선용 후판 역시 협상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지금도 마진을 남기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철광석 가격 인상을 반영해야 한다"며 "이전까지 사용하던 수입재를 포스코 제품으로 전환한다면 가격을 좀 더 낮춰줄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중국의 부동산·인프라 투자와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에 기대를 걸면서 올 하반기부터는 실적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가격 인상에 실패하며 올 3분기 실적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도 오르고 있다. 중국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서며 철광석을 대량 수입하고 있어 글로벌 철광석 가격은 최근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4월 톤당 82달러 수준이던 가격이 이달 들어 110달러를 돌파하며 34% 정도 올랐다. 철광석 가격이 추가로 오를 가능성도 높아 이를 후판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 철강업계 실적 타격은 더 뚜렷해질 수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이 오르는 데다 중국 철강재 가격도 상승하고 있어 가격 인상을 늦추기 힘들다"며 "후판이 아닌 일반열연이나 일반냉연 등 철강 일반재 가격은 인상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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