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도 포기하랬던 삼성 반도체…30년 산증인이 돌아본 1등 비결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7.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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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64메가 D램 개발 주역' 권오현 고문 "이제는 삼성이 기준점 세워야"

경영진도 포기하랬던 삼성 반도체…30년 산증인이 돌아본 1등 비결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일 중요한 건 강력한 리더십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첫발을 알렸던 64메가 D램 세계 최초 개발 28돌을 앞두고 당시 개발팀장이었던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전 종합기술원 회장)이 28일 삼성전자 사내 방송 인터뷰에서 경영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삼성전자 (78,500원 ▲3,000 +3.97%)가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의 독특한 기업 문화인 '총수 경영'의 경쟁 우위가 한몫했다는 회고다.

"최고 경영자의 결단이 사업 성공 비결"
경영진도 포기하랬던 삼성 반도체…30년 산증인이 돌아본 1등 비결
삼성전자는 1992년 8월1일 64메가 D램 시제품을 생산하면서 전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라선 뒤 30년 가까이 1위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다. 다음해인 1993년에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까지 거머쥐었다. 권 고문은 "1992년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1위가 된 뜻 깊은 해였다"며 "거기에 제가 일익을 담당하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말은 반도체 암흑기였다. 삼성전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1987년 이병철 선대회장이 타계할 무렵 삼성전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와 세계적인 불황으로 벼랑 끝에 섰다. 경영진에서조차 반도체 사업이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회장은 1974년 부친인 이 선대회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할 정도로 반도체 사업에 강한 신념을 보였다. 1987년에도 이 회장의 뚝심은 변함 없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사장단이 2010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 담당사장, 이건희 회장, 최지성 사장, 이재용 부사장, 윤주화 사장, 정칠희 부사장(반도체연구소장), 전영현 부사장(D램 개발실장). /사진제공=삼성전자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사장단이 2010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 담당사장, 이건희 회장, 최지성 사장, 이재용 부사장, 윤주화 사장, 정칠희 부사장(반도체연구소장), 전영현 부사장(D램 개발실장). /사진제공=삼성전자
이 회장의 추진력과 선제투자는 결국 5년 뒤 삼성전자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세계 최초 64메가 D램 개발로 이어졌다. 반도체 개발과 시제품 생산, 양산은 짧게 잡아도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투자 규모나 기간을 감안하면 확고한 경영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뤄지기 쉽지 않다.

권 고문도 삼성전자가 30년 가까이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한 동력과 경쟁력에 대해 이 선대회장과 이 회장 등 그룹 총수의 책임감과 도전정신,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꼽았다. 권 고문은 "(삼성이) 성공한 원인은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커미트먼트(commitment·약속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며 "내가 꼭 하겠다는 책임감, 도전정신과 함께 임직원들의 데디케이션(Dedication·헌신), 꼭 달성하겠다는 헌신적 노력이 어우러져서 지금 같은 최고 위치에 오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日 토요타도 총수 경영 리더십으로 '위기 극복' 재조명
경영진도 포기하랬던 삼성 반도체…30년 산증인이 돌아본 1등 비결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0~80년대 반도체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권 고문은 "당시만 해도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같은 일이었다"며 "반도체 사업은 워낙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투자 규모도 커서 위험한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왕좌를 내주기 전까지 메모리반도체 왕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이 한순간에 몰락한 배경도 이런 대목 때문이었다. 일본은 '100% 경영전문인 시스템'이라 빠른 결정을 못했고 업계가 불황일 때 선제투자를 하기 어려웠다.

권 고문은 "나도 전문경영인 출신이지만 굉장한 적자, 불황 상황에서 '몇 조원을 투자하자'고 말하기 쉽지 않다"며 "그런 위험한 순간에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층의 결단과 리더십이 필요한 것처럼 반도체 사업은 앞으로도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반도체 생산라인인 중국 시안 사업장을 방문, 생산라인을 살피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반도체 생산라인인 중국 시안 사업장을 방문, 생산라인을 살피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위기 경영 상황에서 총수 경영체제의 강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토요타가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14년 동안 이어오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끝내고 창업주의 손자인 도요타 아키오 회장을 전면에 세워 위기를 극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권 고문은 "순간적으로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전문경영인과 최고경영자층의 원활하게 소통하고 토의해야 한다"며 "전문경영인과 최고경영자층의 원활한 소통과 토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법 리스크에 발목…"삼성이 새로운 기준 세울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월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월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업계에서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법 리스크가 경영 리스크로 전이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반도체 시장이 다시 한번 재편되는 길목에서 삼성전자가 총수 부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영을 이어가야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등 장기적 안목으로 결정해야 하는 대형 의사결정도 늦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경쟁사인 대만의 TSMC는 10조4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미국의 인텔은 15조3000억원대의 이익을 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9조3000억원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전세계 반도체 실적 1위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이들에 밀려 3위로 쳐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도 포기하랬던 삼성 반도체…30년 산증인이 돌아본 1등 비결
권 고문은 삼성 반도체 사업의 미래 청사진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꼽았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도 1위에 올라서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까지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렸지만 이제 데이터 기반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엔진이자 우리 미래를 열어가는 데 꼭 필요한 동력이라고 확신한다"며 종합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권 고문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세계 최정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저 옛날의 연장선에서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모습과 목표를 공부해야 한다"며 "옛날에는 이렇게 하라는 기준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준점을 우리가 세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의 트렌드를 잘 보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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