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HDC현산 재실사 요구 수용 여부 고심 "'진정성' 확인 필요"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0.07.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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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기범 기자 leekb@사진=이기범 기자 leekb@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이 꺼낸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카드'에 대해 수용 여부를 고심중이다.

재실사에 응할 경우 HDC현산은 계약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등 채권단의 귀책사유가 될 만한 문제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근거로 소송의 명분을 쌓고 계약을 해지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재실사 주장은 채권단이 선뜻 받아 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재실사 요구를 일축할 수도 없다. 거래를 깬 책임이 채권단에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27일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실사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M&A(인수합병) 절차에서 (재실사 요구) 수용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한 검토와 현산측 인수의지의 진정성 관련 저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채권단 차원의 회의는 없었으며 산은의 대응책과 채권단 회의 등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HDC현산은 지난 24일 금호산업에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간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에 대한 재실사에 나설 것을 제안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 14일 금호산업이 '아시아나 M&A 관련 계약서에 명시된 주요 선행조건이 마무리됐으니 계약을 종결하자'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낸 데 대한 회신이다.



채권단이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응하기 위해선 HDC현산의 '인수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한 것에 답은 함축돼 있다. 진정성 없는 재실사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내부에선 이런 시각이 우세하다. HDC현산이 인수 포기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선납부 계약금 2500억원을 둘러싼 '소송전'에 대비해 재실사 제안을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HDC현산의 입장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며 "인수의지가 있는 건지, 포기하고 싶은 건지 속내를 더 파악해 볼 필요가 있어 재실사 요구 수용 여부를 섣불리 예단할 순 없다"고 했다.

채권단의 다른 관계자는 "HDC현산의 입장 발표는 결국 '노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진정성이 없는데 기간과 범위를 정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채권단이 HDC현산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시사한 것이다. 이 경우 문제는 계약해지의 귀책사유가 채권단에 있다고 주장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채권단이 '계약이행을 전제로 한 재실사'를 역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채권단은 이미 계약해지를 염두에 두고 플랜B도 대략적으로 마련해 둔 상태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되면 채권단이 부채를 출자전환한 뒤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게 유력하다. 이후 채권단 중심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항공업황이 정상화됐을 때 다시 매각작업을 벌이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HDC현산이 포기한다면 아시아나항공은 현실적으로 채권단이 가져 갈 수 밖에 없다"며 "가격 등을 고려하면 항공업이 되살아나는 것을 봐가며 매각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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