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한국 탁상행정을 좋아한다[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7.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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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서울 청계천 입구 청계한국빌딩 1층에 둥지를 튼 미국계 커피전문점 ‘블루보틀’ 앞은 장사진이다.



청계천 초입 반경 1km 이내에만도 커피계의 골목대장인 ‘스타벅스’ 매장이 수십개인데도 적진 한 가운데 진지를 구축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 위치/사진제공=스타벅스코리아 홈페이지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 위치/사진제공=스타벅스코리아 홈페이지


블루보틀이 들어선 이 곳은 원래 국내 중견기업인 대한제분의 토종 커피&베이커리 전문점인 ‘아티제’가 있던 자리다.



토종 아티제가 미국산 블루보틀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며 만든 중기적합업종의 탁상행정 결과로 보인다.

청계광장 인근은 누구나 탐내는 매장의 위치였고 그래서 호텔신라는 2011년 이 자리에 매장을 냈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국내 대기업의 커피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를 막았다. 당시 논리는 동네 다방과 빵집을 살리고, 대기업 오너 자녀들의 일감몰아주기나 쉬운 부의 증식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당시 호텔신라의 주주 중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그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누구도 호텔신라나 아티제 운영사인 보나비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호텔신라의 1대 주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신라는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2012년 대한제분에 아티제(보나비)를 넘겼다. 그리고 8년만에 아티제가 차지했던 자리에는 미국 기업‘블루보틀’이 들어섰다. 그 주변은 스타벅스가 장악했다.

청계천에 토종 피라미를 키우겠다며, 더 큰 토종 잉어나 붕어가 못 들어가게 만든 사이 미국산 물고기인 배스나 블루길이 청계천을 장악한 격이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는 이 뿐만이 아니다. 1935년 설립돼 ‘번개표’ 전구와 형광등으로 유명한 금호전기는 창업 84년만인 지난해 말 경영위기로 창업가문 대주주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회사 대주주였던 박명구 회장은 2011년 정부의 중기적합업종 지정과정에서 LED 조명은 기술의 난이도가 높아 대기업이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 LED 조명 시장은 미국의 GE, 네덜란드 필립스, 독일 오스람 등 외국계 대기업들의 독무대가 됐고, 금호전기의 100년 기업의 꿈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20대 국회에서 무산됐던 각종 규제 법안들이 거대 여당 출범과 함께 21대 국회에서 ‘공정경제3법(상법 일부 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재발의된 것을 우려하는 이유다.

소위 공정경제3법은 우리 기업이나 외국기업에게나 모두 공정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결국 우물 안의 우리 기업만 옥죄는 법이 되다 보니, 재계에서 ‘우물안개구리3법(일명 우개3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타당해 보인다. 아무리 반재벌 정서가 강하더라도 규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이뤄져야 하는데 ‘우개3법’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재계가 가지는 두려움은 이 법을 통한 처벌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세상현실을 모르고 만드는 이런 무지의 정책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커피 가공업과 베이커리를 중기적합 업종에 지정한 후 한국을 전세계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나라로 만들었듯이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개3법 개정안’도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온라인쇼핑 확산과 코로나19로 대형 할인점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져가는데,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대형할인점 오프라인 영업규제를 하는 아이러니를 언제까지 계속 할 것인가. 결국 우리 기업은 없고,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평정하면 그게 공정경제인지 묻고 싶다.

제발 이념에 취해 법을 만들지 말고, 눈을 들어 세상의 현실을 보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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