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억에 강남아파트 통째로 사들인 사모펀드 논란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조준영 기자 2020.07.2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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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에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법 대로 세금 다 내고 사업하는게 문제인가"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 사모펀드가 강남의 아파트 한 동을 통채로 매입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가장 휘발성이 강한 화두인 '부동산'과 '사모펀드'가 결합하면서 이번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사모펀드, 강남 아파트 '한 동' 매입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통째로 매입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삼성월드타워'/사진=네이버 거리뷰 캡쳐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통째로 매입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삼성월드타워'/사진=네이버 거리뷰 캡쳐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 사모펀드는 지난 6월 중순 서울 강남구 삼성동(학동로 408)에 있는 '삼성월드타워'를 사들였다. 11층 높이의 이 부동산은 총 46가구로 구성된 한 동짜리 아파트다. 1997년 입주를 시작, 임대주택으로 운용돼 왔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본래 이 아파트 전체의 주인은 한 개인으로, 그가 이 아파트를 직접 개발해 소유했다. 올해 3월 이지스자산운용과 매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4월 말까지 거래를 종결키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19(COVID-19) 확산으로 거래가 미뤄졌고, 지난달에서야 마무리됐다. 매매가격은 약 420억원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번에 매입한 '삼성월드타워'를 리모델링해 새 아파트로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서울 내에서 신규로 공급할 주택 부지가 없는 가운데,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를 통해 노후화된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 후 신규 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은 시장의 좋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삼성월드타워는 노후화된 '나홀로 아파트'로, 거주 매력도가 낮은 건물을 리모델링을 통해 양질의 주거시설을 공급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리모델링 완료 시점 등 향후 계획은 현재 미정이다.

◇추미애 "사모펀드 투자, 주거용 아파트 규제해야"
그러나 사모펀드가 강남 아파트 한 동을 통채로 매입했다는 소식에 외부 시선은 곱지 않다.

최근 집값 폭등으로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려는 차에 이를 피하기 위해 사모펀드를 활용하는 '꼼수'를 쓰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모펀드는 대체투자 형태로 그동안 빌딩, 물류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해 왔다. 아파트를 직접 매입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모펀드가 소수의 '큰손' 투자자를 위한 것인 만큼 사모펀드를 통한 강남 아파트 매입은 다주택자에 대한 강화된 규제를 피하면서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는 큰손들의 우회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 화상국무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2020.7.14/뉴스1(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 화상국무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2020.7.14/뉴스1
최근 금융과 부동산의 분리를 주장하고 나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사모펀드의 강남 아파트 매입에 직격탄을 날렸다.

20일 추 장관은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어느 사모펀드가 강남 아파트 46채를 사들였다고 한다. 다주택규제를 피하고 임대수익 뿐만 아니라 매각차익을 노리고 펀드가입자들끼리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금융과 부동산 분리를 지금 한다해도 한발 늦는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본시장법상의 사모펀드 투자대상에 주거용 아파트를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뿔난 업계 "혜택 없이 세금 다 내는데 잘못?"
사모업계는 이같은 비판에 난감한 모습이다. 특별한 혜택 없이 세금을 모두 내면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에 대해 '규제' 등을 거론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논리다.

논란의 당사자가 된 이지스자산운용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주택자로서 취득세, 보유세 및 양도차익에 대해 부동산 펀드도 일반 법인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며 "과세 당국이 부과하는 세금을 모두 내야 하는 상황에서 사모펀드가 '투자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기적으로 봐도 이번 사업은 올해 연초부터 매입을 검토해 4월 말까지 거래를 마치는 것이 목표였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거래가 연기된 것이기 때문에 6.17 대책을 회피하고자 사모펀드를 만들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모펀드가 주거용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추 장관의 주장에 대해 운용업계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모펀드의 아파트 투자는 오히려 '선진국형 투자'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대체운용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주거형 주택에 대한 국내 투자는 '전세'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제도 때문에 투자매력도가 떨어졌을 뿐"이라며 "미국에서는 투자회사가 아파트를 매입해 월세를 받는 식의 임대차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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