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엿보다.

고윤희(시나리오 작가) ize 기자 2020.07.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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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NEW사진제공=NEW


올여름 극장가 최대화제작 '반도'(감독 연상호)가 개봉 첫 주말 180만 관객을 넘어섰다.

그럼 영화 산업이 다시 살아날까? 그럴 것 같진 않다. 우리는 바야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와 반도가 무덤 속인 극장가에 잠시 불을 붙였던 건, 지금의 코로나 시대와 영화 속 바이러스로 모든 게 멈춰버린 세상과 닮아서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영화와 기타 영상산업의 급속한 변화의 조짐은 예견되어 왔다. 초밀레니얼 세대로 일컬어지는 10대와 20대들은 영화나 TV보다 유튜브를 더 선호한다.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극장에 가거나, TV 본방 사수를 하기보단, 유튜브로 ‘짤방 편집본’을 보는 걸 더 선호한다. 30대 이상이 영화의 스토리를 본다면, 초밀레니얼 세대들은 영상을 보는 게 아니라, ‘감각’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생각한다는 뜻. 하지만 초밀레니얼 세대들은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 생각하지 않고, 스토리를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긴 영화나 드라마 호흡을 원치 않는 이유다. 감각에 중요한 건 ‘자극’이지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 초밀레니얼 세대를 길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그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짊어질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반도'에 나온, 민정(이정현)의 딸들의 모습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의 생존자들

영화 '반도'는 좀비떼들로 인해 멸망한 우리나라에서 생존자들끼리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바이러스로 세상이 망하면 어떻게 될까? 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것들이 멈추고 달라진 지금의 현실이 많이 반추되었다.

영화 '반도'의 생존자들은 정석(강동원)과 민정(이정현), 그리고 민정의 딸들인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과 631부대 대원들이다. 이 생존자들도 두 부류로 나뉜다. 정석과 민정이 이성을 지키고 살아가며 약자를 구하려는 ‘착한 구원자’파 라면, 나머지 631부대 대원들은 공포에 미쳐서 광기와 이기심만 남은 자들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구원파의 주요 인물이 여자와 어린아이들(소녀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구원파에 정석(강동원)과 김노인(권해효) 두 남자가 있지만, 강력한 히어로 이미지인 정석도 좀비떼들에게 죽을 뻔하다가, 어린 소녀인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에게 구조된다. 또한 김노인은 오래 전부터 정신이 나가있다.

강동원의 멋진 눈빛보다 더 빛나 보이는 건, 좀비떼를 의연하고 쿨하게 물리치는 준이(이레)의 카체이싱과 장난감 RC카로 좀비떼를 유인하는 동생 유진이다. 여자들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는 희생자거나 구원자인데, 남자들은 주인공인 강동원을 빼놓곤, 짐승 같은 이기심과 광끼만 남은 미치광이들이다. 감독의 재미있는 세계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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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상식한 세상을 상식적으로 산다는 건

종말 이후의 세상에 남은 건 이기심과 몰상식뿐이다. 로마가 몰락하기 전에 원형경기장에 노예와 맹수를 집어넣어 맹수가 사람 잡아먹는 걸 구경했던 것처럼, 타락한 인간을 상징하는 631부대원들도 좀비와 포로로 잡힌 인간들을 경기장 안에 집어넣고 좀비들이 인간을 잡아먹는 걸 게임처럼 즐긴다. 국가 체제가 멈추고 법과 질서와 윤리가 사라지자, 인간은 추악한 본성을 남김없이 드러내 놓는다. 정석(강동원)은 영화 초반 친누나를 구할 수 있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상식’을 택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상식적으로 산 자신을 후회하고 자책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선 상식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식을 깨버리는 행동을 한다.아마도 감독이 말하고 싶은 주제는 이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주제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뉴 노멀(New Normal.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 시대로 일컬어지는 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모두 혼란에 빠져있다.

기존에 우리가 지켜왔던 모든 기준점이나 상식이 사라져버렸다. 모든 산업과 인간의 삶의 양식이 새롭게 재정비 될 것이라고 언론과 책들은 떠들어댄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송프로와 책들이 가득 쏟아지지만 정작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기준점을 삶에 적용해야 될지를 몰라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코로나 불루라 불리는 우울증이 광기처럼 스멀스멀 번져나가고 있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 줄어든 일자리와 수입 때문에 전국민의 80~90%가 알게 모르게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혼율과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늘어나고, 아파트에서는 매일 담배연기와 층간소음 문제로 시끄럽게 방송을 해댄다. 미래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학교도 회사도 백화점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전혀 준비도 못한 채 닥쳐버린, 종말 같은 불안감을 주는 이 언택트(Uncontact.비대면.비접촉) 뉴 노멀 시대, 우린 어찌 살아야 하나?

영화 '반도'는 답한다.
“어차피 답은 없으니, 상식 말고, 가슴을 따라!”

고윤희(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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