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상형은?" 썸톡방에 유부남녀가 입장하셨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7.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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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메신저서 들어가는데 단 1분, 기혼남녀 모여 '아슬아슬한 대화'…피해 남편 "아내 불륜, 여전히 큰 상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일벙'은 일대일 만남이란 뜻이고, '공커'는 공개커플이란 뜻이다. 이런 신발^^/사진=썸톡방 화면'일벙'은 일대일 만남이란 뜻이고, '공커'는 공개커플이란 뜻이다. 이런 신발^^/사진=썸톡방 화면
"내 다리공(다리 공개)."

그 말과 함께, 단체 채팅방에 사진 하나가 떴다. 한 여성의 다리였다. 사진은 곧 가려졌다. 그 방에 있던 36살 남성 A는 "하악"이라고 내뱉더니 "나 숨 좀 쉬게해줘"라고 호응했다. 사진을 보낸 35살 여성 B는 이에 만족한 듯했다. 또 다른 38살 남성 C는 '와, 감동이에요' 이모티콘을 날렸다. 다른 이들도 "존예(정말 예쁘다)", "맨다리가 더 예뻐", "그거 (직접) 보고 싶으면 존버하자(버티자)" 등 대화를 이어갔다. 벙참(직접 만나는 것)을 꼭 하잔 얘기까지.

결혼한 남녀들이었다. 한 사람에게 끌렸고, 사랑에 빠졌고,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했단 의미다. 그런 그들이 여기서,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황당하게도, 이곳은 누구나 맘먹으면 손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철저히 나를 감출 수 있었다. 별다른 가입도, 개인 정보도 필요 없었다. 오빠, 여보 등 두 글자짜리 익명 대화명과 색깔로만 해놓은 프로필만 보였다.



"오빠 이상형은?" 썸톡방에 유부남녀가 입장하셨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기혼자들 '썸톡방(썸을 타기 위한 대화방)' 안에, 3일간 그리 머물러 있었다.

취재를 시작한 건 세 가족 아빠의 제보 때문이었다.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했다. 올해 초, 아내가 외도했다며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 통로가 한 메신저 '오픈 채팅방'이라 했다. 그걸 통해 아내가 남성 여럿과 만났다고 했다. 두 달 만에 알아차렸고, 용서했지만, 상처는 채 씻기지 않았단다. 여전히 많이 힘들다고 했다.



괜스레 기사로 알리는 꼴이 될까 싶어, 오래 주저했었다. 나 또한 기혼자이기에 거부감도 컸다. 그러나 썸톡방에 들어가 체험하는 동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수백 번씩 했다. 그래서 내 아내가, 남편이, 이성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꿈에도 모를, 배우자를 위해 펜을 잡기로 했다. 이 채팅방을 관리하는 메신저 측이, 부디 기술적으로 규제할 방안을 꼭 마련하길 바라는 맘으로.

참고로 이 체험을 시작하기 전에, 아내에게 미리 알렸다(오해하면 위험, 생명보험 가입).

1분도 안 걸린, '썸톡방' 입장
이 옷을 입고 만나러 나오란다./사진=썸톡방 화면이 옷을 입고 만나러 나오란다./사진=썸톡방 화면
단 1분이었다. 기혼 남녀들의 '썸톡방'으로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로 놀라웠다. 국내 가입자가 4500만명, 전 국민이 사실상 다 쓰는 메신저에 이리 활짝 열려 있다는 게.


특정 키워드로 검색만 해도 엄청난 기혼 썸톡방이 쏟아졌다. 썸이 아닌 친목방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썸방'이었다. 한 채팅방 배경은 남녀가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고, 설명엔 '썸&친목', '연애', '얼공필(얼굴 공개 필수)' 등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방은 '존잘, 존예들의 썸방'이란 제목으로 개설돼 있었다. 그 방 배경 사진엔 '이 밤은 지고, 난 널 책임지고' 같은 문구가 있었다. 누가 봐도 개설 목적이 뚜렷해 보였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갔다. 그러니 대뜸 "남자야? 여자야?"하고 물었다. 남자라 답하니 "O휴(남자란 뜻)는 마감이야"라고 했다. "아, 마감이요?"라고 되묻자마자 이미 쫓겨났다.

또 다른 방에 들어갔다. 방장이 '닉변(닉네임 변경)'을 하라고 했다. 어떻게 바꾸느냐 물었더니, 본인들처럼 하라고 했다. '닉네임 두 글자, 나이, 사는 곳, 성별' 이 순서로 쓰면 됐다. 그래서 '똘이(반려견 이름), 38, 서울, 남' 이렇게 바꿨다. 그랬더니 프로필 사진을 색깔만 남기고(예컨대 빨간색, 파란색 등) 바꾸란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우물쭈물하다 또 쫓겨났다.

잠시만 한눈 팔아도, 이렇게 대화가 쌓여 있었다./사진=썸톡방 화면잠시만 한눈 팔아도, 이렇게 대화가 쌓여 있었다./사진=썸톡방 화면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또 다른 썸톡방에 겨우 안착했다. 대화명을 '새끼곰'이라 했다. 얼마 전 사육장 곰들의 실태 기사를 써서였다. 그랬더니 두 글자로 바꾸라 해서, '색곰'이라 바꿨다. 이들에게 썩 잘 어울리는 대화명이라 여겼다.

다시 강조컨대, 그 썸톡방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진입 장벽도 없었다. 모든 건 익명이었다. 그러니 나를 철저히 숨길 수 있었다.

"안전하게 논다"며 '웨딩 사진'까지 받아
이렇게 들어가기가 쉽다. 이렇게 두어도 괜찮은 것일지./사진=썸톡방 리스트 화면이렇게 들어가기가 쉽다. 이렇게 두어도 괜찮은 것일지./사진=썸톡방 리스트 화면
들어간 뒤 거기 남아 대화하려니 추가 '인증'이 필요했다.

총 3단계 인증이 있다고 했다. 1단계는 '얼굴 사진'을 보내는 거였다. 예전에 칼럼에 썼던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2단계로 '웨딩 사진'을 보내달라 했다. 아내 얼굴을 가리고, 사진 한 장을 찾아서 보냈다. 그랬더니 "옆 모습이라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앞모습이 나온 것으로 다시 보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일까' 잠시 생각했다.

다 끝났나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실시간 인증'을 하란다. 앞에서 인증한 사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겠단 거였다. 그러니 "손가락 네 개를 펴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내게 말했다. 난 전화 취재를 하는 방에 들어가 백 만년 만에 셀카를 찍었다. 그걸 보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합격"이라며 "반갑다"는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합격이란 말은 입사 이후 처음 들었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싶어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긴 했다, 이제야 오가는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으니.

대체 왜,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걸까. 추후 다른 방 방장에게 물으니 "안전하게 놀기 위한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을 속이진 않는지, 기혼은 맞는지,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은 아닌지 등을 파악하기 위함이란 거였다. 덧붙이자면, "채팅방 물 관리를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방에 따라 얼굴을 보고 내쫓기도 한다며.

썸타기 위한 '질문'들
이렇게 얘기했다가 강퇴 당했다. 언젠가 내 얘기가 생각나리라./사진=썸톡방 화면이렇게 얘기했다가 강퇴 당했다. 언젠가 내 얘기가 생각나리라./사진=썸톡방 화면
그리 썸톡방에 어렵사리 들어왔다.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썸톡방 하나를 더 들어갔다.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 방도 같은 방식의 '인증'을 거쳤다. 그렇게 총 2개의 오픈 채팅방이 채팅창에 띄워졌다.

이어 썸타기를 위한 정보 공유가 시작됐다. 날 '신입'이라 부르던 방장 몇몇은, '공식 질문'이라며 작성해달라고 했다. 질문은 총 10가지였다.

기억나는 것 몇 가지는 이랬다. '마지막 연애는?'이라고 돼 있었는데, 대체 뭔 소린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낮과 밤 중 언제가 '프리한지(자유로운지)'도 물었다. 썸인지 친목인지도 물었고, 키와 주량도 적어야 했다. 마지막으론 '썸상형(썸 이상형)'이 뭔지 답하라고 했다. 이런 단어는 태어나 처음 봤다. 빈칸으로 보내니, “오빠, 썸상형 뭐야?”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취재이고, 아내에게 밝혔음에도, 이걸 적는데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기혼들끼리 모여서, 썸을 타겠다며 '이상형'을 적어내라는 게.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내, "XXXX들"이라며 함께 욕한 뒤에야 맘이 진정됐다. 질문 10개는 대강 적어서 냈다.

제보한 남편은 스스로를 '평범한 직장인'이라 소개했다. 일상의 균열을 만든 건, 아내가 들어간 '썸톡방'이었다. 거기서 다른 남성들을 만났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가 받는 제보 메일 화면 캡쳐제보한 남편은 스스로를 '평범한 직장인'이라 소개했다. 일상의 균열을 만든 건, 아내가 들어간 '썸톡방'이었다. 거기서 다른 남성들을 만났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가 받는 제보 메일 화면 캡쳐
각자 작성한 질문들은, 채팅방 상단에 고정이 됐다. 썸상형엔 '비율 좋은 분', '오빠 같은 연하', '섹시한 남자', '다정하고 웃긴', '귀여운'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리고 공지엔 "읽어보시고 모두 썸 타세요"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기혼 남녀를 짝짓기 위한 노력이 그리 가상했다. 채팅방 인원은 각각 12~15명을 오갔다. 남녀 성비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조율하는 분위기였다. 썸타는 걸 감안한 거였다. 대화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규칙도 정해 놓았다. 속해있던 한 썸톡방에선 '24시간 내 100톡 이하 강퇴'란 규정이 있었다. 이를 어겨 쫓겨나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했다.

또 대화 도중 원하는 이성의 얼굴을 볼 수 있게 '지목'하는 것도 있었다. 지목당한 이는, 본인 얼굴 사진을 공개해야 했다. 그럴 땐 대부분 "예쁘다", "잘생겼다"며 과한 칭찬이 오가곤 했다.

선을 넘던, 아슬아슬한 대화들
이런 대화명을 썼다가 또 강퇴 당했다./사진=썸톡방 화면이런 대화명을 썼다가 또 강퇴 당했다./사진=썸톡방 화면
썸타기에 부응하듯, 선을 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친목 대화가 주를 이뤘지만, 아슬아슬한 대화도 빈번했다. 모르고 보면, 기혼이란 걸 짐작하기 힘들만큼.

이성적 호감을 드러내는 건 다반사였다. "초미녀", "존잘", "존예" 등 외모를 평가하며 좋다고 하는 게 가장 많았다. 그러다 한 남성을 두고 여성 두 명이 서로 "좋아한다", "보고 싶다", "이 오빠는 내 것"이라며 경쟁하듯 얘기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셋이 썸을 탄다"고 했다. 서로 취향을 얘기하다가, 너무 잘 맞는다며 "둘이 사귀어"라고 다른 이가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면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실제 썸톡방 내에선 사귀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를 '공커(공개 커플)'라고 불렀다. 이들은 채팅방 내에서 서로의 일상에 대해 계속 확인하고, 안부를 묻고,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기혼 여성인 것처럼 대화방을 만들었더니, 1분도 안 돼 이런 채팅창이 쏟아졌다. 정신차리세요, 저 남자에요./사진=일대일 채팅방 화면기혼 여성인 것처럼 대화방을 만들었더니, 1분도 안 돼 이런 채팅창이 쏟아졌다. 정신차리세요, 저 남자에요./사진=일대일 채팅방 화면
성적(性的) 대화도 서슴지 않았다. 밤 10시쯤이었다. 30대 후반이라 밝힌 여성 D씨가 연하 남성 E씨에게 "선호하는 체위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D씨는 "후배위하는 체위"라고 답했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고 웃었다. 왁싱 얘기를 하다 서로의 중요 부위 체모가 많고 적음을, 가슴 크기에 대한 주제로 대화하다 "남친이 만져주면 커진다던데" 등이라 하기도 했다. 다리를 공개하자 "치마 올려"라고 추가로 말하곤 웃기도 했다.

그리고 만난다, '벙'의 세계
제보자 남편이 보여준, 그의 아내와 썸남1이 나눈 대화 화면./사진=제보자 제공제보자 남편이 보여준, 그의 아내와 썸남1이 나눈 대화 화면./사진=제보자 제공
여기서 끝나는 게 아녔다. 썸톡방에서 쌓은 관계는 '벙(벙개, 직접 만남)'으로 이어졌다. 대화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바로 이거였다. 아예 방 규정에 "2주 안에 무조건 벙에 참여한다"고 정해 놓은 곳도 있었다. 한주에 많게는 3~4회씩 한다고 했다.

벙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술벙(술 먹는 벙)', '밥벙(밥 먹는 벙개)', '커벙(커피 마시는 벙개)', 그밖에 지역 이름을 붙여 'OO벙'이라고 일컬었다. 서로 친한 이들끼리는 '일벙(일대일 벙)'을 많이 하는 분위기였다. 아예 썸톡방 이벤트로 둘씩 짝을 지어, 일벙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니 온갖 명목으로, 시도 때도 없이 만나잔 이야기가 오갔다. 날짜를 정하고, 가능한 이가 누구인지 수시로 투표에 부쳤다. 한 채팅방에선 30대 여성 F씨가 "이번 주말에 가평에 놀러가자"고 제안했고, 집안 일정 때문에 어렵다는 남성 G씨에게 "아기도 데리고 오라", "집에 놀러 가겠다"며 계속 부추기기도 했다.

제보자 남편이 보여준, 그의 아내와 썸남2가 나눈 대화 화면./사진=제보자 제공제보자 남편이 보여준, 그의 아내와 썸남2가 나눈 대화 화면./사진=제보자 제공
이미 호감 또는 친분이 있는 남녀끼리는, "그날 정말 예뻤다, 좋았다", "만날 때 다음에 내 옆에 앉아라"라고 하거나, "다음에 만날 때 이거 입고 나와"하면서 원피스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술 마시는 벙에 직접 가서 취재해보고 싶었으나, "신입이라 일주일은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던 '썸톡방'
썸톡방 화면들. 떳떳하면 이름, 얼굴 모두 깔 수 있지 않았을까./사진=남형도 기자 카톡썸톡방 화면들. 떳떳하면 이름, 얼굴 모두 깔 수 있지 않았을까./사진=남형도 기자 카톡
썸톡방은 쉼이 없었다. 아침에 깨선 "굿모닝"이라 인사를 했고, 어떻게 출근하는지, 오늘 뭘 하는지를 하나하나 다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점심을 뭘 먹었는지 얘기하며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고, 그날 힘들거나 짜증 나는 일이 뭐였는지, 퇴근길에 또 얘길 나눴다. 새벽 2~5시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24시간 내내 대화가 오간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평소 아내와 나누던 대화들이었다. 아침 컨디션은 괜찮은지, 출근은 잘 했는지, 오늘 일이 많은지, 점심은 잘 챙겨 먹었는지, 직장에선 힘들고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밥을 함께 먹고, 몸을 기대어 그날 차마 못 본 서로의 하루를 묻고는 했다. "오늘 실은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아내가 그런 말로 시작하면, 피곤해 누웠다가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제대로 들어야 할 얘기였기에. 그 마지막에 아내는 늘 "이제 좀 후련해"라 했었다.

그 하나하나가,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정(情)이었다. 그러니 썸톡방 속 그들의 수다도, 실은 배우자와 나눠야 할 소중한 대화인 게 맞았다.

썸톡방에 머문 3일 동안, 그런 소중한 일상에 지장을 많이 받았다. 잠시 확인하지 않으면, 채팅방 오른쪽에 '빨간색 숫자(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수)'가 수백 개씩 쌓였다. 다 무시했다간 쫓겨날까 싶어, 자주 확인해야 했다. 그만큼 아내와의 대화도,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도 줄 수밖에 없었다. 이 대화에 제대로 참여하면, 하루종일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지내야 할 터였다. '그럼 가족과 보낼 시간이 얼마나 많이 줄어들까', 그게 어렵잖게 짐작이 됐다.

결국 사흘째가 되던 날 아침, 난 채팅방 두 곳에서 모두 쫓겨났다. 방장은 내게 "색곰(내 대화명)은 24시간 동안 10톡 밖에 안 된다"며 내보내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참여한 대화는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때 "안녕하세여"하던 것과, 취재 목적으로 "이건 뭐에여", "저건 뭐에여"하고 물어본 것 말곤 없었다. "빠염"이란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를 들으며, 난 마침내 해방될 수 있었다.

대화명 '니네그렇게살지마'로 들어가 보니
썸톡방에 들어가자마자 받은 인사./사진=남기자가 들어간 썸톡방 화면썸톡방에 들어가자마자 받은 인사./사진=남기자가 들어간 썸톡방 화면
그리고는 실험 하나를 했다. 대화명을 '니네그렇게살지마'로 설정하고, 썸톡방 10곳을 들어가 봤다.

썸톡방 7곳은, 아무 말도 안 했음에도, 들어가자마자 바로 쫓겨났다. 대화방 공기가 내 입장과 동시에 냉랭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머지 3곳은 가만히 지켜보길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네, 그럴게요"하더니 바로 쫓아냈다.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따져 묻거나, "제가 뭐 어쨌는데요"라고 반박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 정도 부끄러운 맘으로 들어와 있었던 걸까, 대화명만 봐도 바로 내쫓아야 할 만큼. 혹시 배우자가 찾아온 거라 여겼을 수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기혼 인증을 한다고, 웨딩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사진=개인 톡방 화면기혼 인증을 한다고, 웨딩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사진=개인 톡방 화면
썸톡방 들어온 남성 "아내가 날 무시해서"
신입 합격 후 받은 10가지 질문. 이걸 보고 공유하고 각자 썸을 타란다./사진=썸톡방 화면신입 합격 후 받은 10가지 질문. 이걸 보고 공유하고 각자 썸을 타란다./사진=썸톡방 화면
그리 떳떳하지 않은, 이 썸톡방을 대체 왜 찾아오는 걸까. 궁금해 직접 묻고 싶었다.

'기혼 여성입니다'란 제목으로 일대일 채팅방을 만드니, 1분도 안 돼 10명의 기혼 남성이 말을 걸었다. 주로 이런 얘기였다. "건전한 대화만 원하세요? 저는 안 그런데", "어떤 남자 좋아해요?", "만남은 안 하세요?", "퇴근하고 집에 가세요?" 등이었다. 오장육부서 "이 강아지야"란 말이 끓어올랐다.

그들 배우자의 맘으로 기자인 것을 밝힌 뒤 물었다. 대체 썸톡방을 왜 하는 것인지. 대부분 말도 없이 나갔으나, 대답해 준 이도 한 명 있었다. 서울 사는 40세 남성이라 했다. "외롭다", "아내가 얘길 잘 안 들어준다", "날 무시한다", "애 보는 것 외엔, 쉴 때 유튜브만 본다",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한다"는 등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제가 부부 상담 프로그램을 보니까, '배우자는 본인의 거울'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내 분에게 어떻게 행동했었나 들여다보세요. 혹시 선생님이 스마트폰만 보지 않았는지, 편하게 막 대하지 않았는지, 얘길 무시하지 않았는지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채팅방을 나가 버렸다.

남자 셋 만난 아내, 남편은 여전히 운다
배우자에 대해, 각자 이렇게 공부를 하면 어떨까요./사진=썸톡방 공지 화면배우자에 대해, 각자 이렇게 공부를 하면 어떨까요./사진=썸톡방 공지 화면
처음 이 일을 제보해줬던, 남편 얘기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그의 아내는 남성 세 명을 만났다고 했다. 썸톡방을 통해서였다. 평소에 잘 나가지 않던 아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에 들어왔단다. 한 번은 아내가 새벽 3시 넘어 집에 왔는데, 메시지가 왔다. 남성이었다. 그 이후로도 메시지를 확인해 두 번째, 세 번째 남성과 만남을 가졌단 걸 알게 됐다. 대화창엔 아내가 "그만큼 오빠가 좋았어", "힘들 때 기대고 싶을 만큼 듬직했어"라며, 얘기한 흔적이 있었다.

두 번째 남성과는 "잘자요", "내일 예쁘게 하고 와", "내 꿈 꿔" 등의 대화가 오갔다. 세 번째 남성 이름은 심지어 '매니저'라 저장돼 있었다. 대화는 그게 아녔다. 그 남성이 아내와 나눈 채팅방엔 "남편이 같이 있을까봐 메시지 안 보냈어", "가정 평화는 지켜줘야지", "보러 갈게" 등의 말이 오갔다.

이런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사진=썸톡방 화면이런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사진=썸톡방 화면
남편은 어이가 없고, 화가 많이 났다. 별거까지 했고, 딸을 생각해 결국 아내를 용서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고, 상처가 깊고 힘들다"고 했다. 쉬이 지워지는 게 아녔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겐 호기심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엄청난 상처"라며 "우리가 제일 많이 쓰는 메신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정말 무섭다"고 했다.

메신저 측 "추가 조치할 부분이 있는지 보겠다"
"오빠 이상형은?" 썸톡방에 유부남녀가 입장하셨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결국, 국민 메신저에서, 누구나 손쉽게, 그것도 익명으로, 다소 비윤리적인 방에 접근할 수 있는 게 핵심 문제였다.

21년간 이혼을 다뤄온 조혜정 전문 변호사도 "국민 메신저인데 누구나 올 수 있게, 이렇게 활짝 열어놓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썸톡방 리스트'를 보고 많이 놀라는 분위기였다. 조 변호사는 "채팅 사이트에선 하다못해 회원 가입을 하게 하는 등 최소한 심적 부담이라도 주는데, 이건 그런 것도 없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팅하려면 당당히 이름을 까고 하도록, 익명 프로필을 없애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조 변호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한쪽의 불륜이, 배우자 입장에선 엄청 절망적인 일이거든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상처가 잊히는 게 아닙니다. 부부 관계는 유리와 같아서, 한 번 깨지면 돌이킬 수 없어요."

이와 관련해 해당 메신저 측은 썸톡방 규제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추가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그 메신저 홍보담당 파트장은 "성매매나 조건 만남은 금칙어를 설정하는데, 기혼 썸톡방 같은 건 그 목적을 추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메신저 측에서 현재 시행하는 방안은 부적절한 발언시 강퇴를 하거나, 신고를 하도록 하는 기능 정도란다. '사적 영역'이라 일일이 다 들여다보고 제재하긴 어렵다는 것. 그러면서도 이 파트장은 "추가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보겠다"고 약속했다.
대화에 끼기가 참 어려웠다./사진=썸톡방 화면대화에 끼기가 참 어려웠다./사진=썸톡방 화면
에필로그(epilogue). 썸톡방을 나온 뒤 오래 전에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우리도 사랑일까'란 제목의.

결혼 5년차 부부인 마고(아내)와 루(남편). 어느 날, 마고는 여행길에서 대니얼을 만나 강하게 끌린다. 그리고 남편 루와 대니얼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 마고는 대니얼에게 간다. 그러나 설렘은 순간이었고, 감정은 다시 시든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이거였다. 수영장에서, 한 나이든 여인이 마고에게 했던 말.

"새것도 결국 헌 것이 된다우. 헌 것도 처음엔 새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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