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르고 세다…‘K-좀비영화' 전성시대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

머니투데이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2020.07.16 07:00
글자크기
코로나 '팬더믹'의 영향일까. 2020년 여름 극장 스크린이 '좀비'(Zombie)물로 가득하다. 감염, 폐쇄, 격리 등 어느새 익숙해진 설정들 속에서 바이러스에 걸려 돌변한 사람들, 이들과의 힘겨운 사투 이야기가 바이러스로 힘겨운 극장가를 뒤덮고 있다.

해외에서 유입된 '좀비'가 한국에서 귀신, 강시, 도깨비 등을 넘어 주류로 올라서기 시작한 건 2016년 '부산행' 부터. 이후 창궐한 한국형 K좀비들은 외산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피드와 지구력은 물론이고 규모와 활동반경 모두 압도적이다. 해외영화의 멍청하고 느린 좀비보다 훨씬 영리하고 강한 모습으로 등장해 관객의 공포심을 한층 끌어 올리고 있다.



특히 주목을 받는 건 한국형 K좀비들의 연기력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지간한데 부딪쳐서는 아랑곳없이 타깃을 향해 돌진한다. K좀비 연기자들 엄청난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이겠지만, 일각에서는 좀비 연기를 하는 팀의 수요와 함께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희망적?인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한국형 K좀비물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형성을 쌓으며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 중이다. 향후에도 K좀비는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한국형 흥행 장르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까.



◆마법 걸린 시체 노예에서…흡혈귀+바이러스로 '변이'

좀비는 원초적 의미로 아메리카 서인도제도 지역의 부두교 주술사 보커(bokor)가 마법 또는 마약으로 부활시킨 시체를 일컫는다고 한다. 원죄에 대한 형벌로 죽어서도 노예 노역에 시달리는 시체를 말한다.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점에서 중국 전설에 나오는 '강시'나 한국의 '귀신'과 비슷하지만 용모는 확실하게 구분된다. 강시는 겉만 보고는 산 사람과 구분이 어렵고, 귀신도 피부나 꼬리 등 일
부 특징으로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좀비들은 대부분 병들고 부패한 시체의 모습으로 삐딱하게 걸어 다닌다.

좀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영화는 1932년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한 배우 벨라 루고시(Bela Lugosi) 주연의 '화이트 좀비'다. 하지만 썩은 시체로 걸어다니는 좀비의 원형을 제시한 건 1968년 '살아있는 시체의 밤'이다. 조지 A로메오 감독이 만든 '시체 3부작'시리즈는 최근까지 리메이크되며 '좀비 영화의 원조'로 꼽힌다.


화이트 좀비 포스터(왼쪽)와 살아있는 시체의 밤 스틸 컷화이트 좀비 포스터(왼쪽)와 살아있는 시체의 밤 스틸 컷


중국의 강시나 한국의 귀신이 개별적인 '원한'관계에 따라 활동하는데 반해, 좀비들의 활동은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하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리지 않고, 부부와 부모자식도 없이 누구에게나 덤벼든다.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 강시나 귀신, 드라큘라와 달리, 벌건 대낮에도 오가며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주목할 점은 대중문화 속 좀비의 모습이 보다 능동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은 뒤 주술이나 마약에 의해 노예노동을 당하는 소극적인 존재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 또는 종족을 확산시키려는 강력한 존재로 변해왔다. 이 과정에서 결합된 대표적인 요소가 흡혈 드라큘라, 그리고 바이러스다.

◆뛰고 올라타고…좀비가 더 무서워진 이유

2002년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는 좀비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 시조로 꼽힌다. 침팬지의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 좀비가 되어 극도의 분노 속에서 뛰어다닌다.

2007년 '나는 전설이다'에서 좀비들은 스피드 뿐 아니라 점프력까지 인간을 능가했다. 2013년 '월드워 Z'에서 좀비들은 보다 빠른 전염성으로 대규모의 집단을 형성했다.

28일후 스틸컷28일후 스틸컷
현대 좀비는 '바이러스'와 결합되면서 보다 강력한 모습으로 ‘변이’하고 있다. 드라큘라의 습성과 무차별적인 공격성, 그리고 진화하는 능력까지 더해지면서 좀비는 공포장르의 대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18년 넷플릭스에서 상영된 ‘버드박스’에서 좀비를 눈으로 보는 사람은 누구나 좀비로 변한다. 2016년 개봉한 '셀, 인류최후의 날'에서는 휴대폰으로 통화만 해도 감염이 된다.

코로나19가 비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공기 중으로도 감염된다는 공포스런 현실은 이미 영화 속 가상현실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의·인간에 의한’… K좀비의 진화

K좀비의 탄생은 과도한 욕망, 환경오염, 기술만능주의 등 인간의 '원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주술사의 마법보다 강한 인간의 탐욕이 K좀비의 위력과 무자비함을 뒷받침하는 근거라 할 수 있다.

부산행 스틸컷부산행 스틸컷
대다수 좀비들이 빠르게 뛸 수 있다는 점에서, 종족 계보가 있다면 K좀비는 ‘28일 후’의 좀비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에 최신 바이러스까지 무장된 K좀비는 보다 전염성이 높고 치명적이다. 2013년 월드워Z때만 해도 감염되는데 12초가 걸렸다면 최근 등장하는 좀비들은 물리면 죽음을 경험할 새도 없이 좀비로 변한다. 총으로 쏘거나 머리를 공격당하면 죽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 K좀비는 완전히 잘리거나 명중시키지 않으면 곧잘 부활하기도 한다. 시체인지 인간의 변이인지, 반인반좀인지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다.

부산행에서는 바이오 기업의 무리한 신약개발을 원죄로 암시한다. 2018년 개봉한 창궐에서는 외국에서 건너 온 좀비 '야귀'가 조선시대 왕위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용되고, 엄청난 희생을 초래한다. 2019-20년 히트를 친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 킹덤1,2에서도 조선시대 대를 잇고 왕조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탐욕이 좀비의 창궐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앞서 한국형 바이러스와 좀비영화의 원형을 보여준 것으로 꼽히는 GP506(2008년)에서도 군대 내 의문의 몰살이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살아있다는 K좀비의 또 다른 진화를 보여줬다. 개별 좀비들은 자신들의 원래 가졌던 직업적 특성과 신체적 능력을 더욱 잘 활용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서울역, 부산행을 거쳐 반도를 통해 등장한 K좀비는 지구 멸망 후, 더욱 진화된 좀비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살아있다 스틸컷#살아있다 스틸컷
K좀비는 영화,드라마를 넘어 다른 장르로도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좀비를 소재로 한 게임, 웹툰 뿐 아니라 공연, 전시 등도 많아졌다. #살아있다는 공식적으로 외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국내 여러 좀비 웹툰들과 유사점도 많다. 영화 웜바디스나 기묘한 가족처럼 사랑과 우정을 지닌 다양한 캐릭터의 좀비도 다채롭게 시도되고 있다. 향후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인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도 웹툰원작의 좀비 학원물이다.

바이러스 탓에 힘든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에 걸린 K좀비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늘 시대와 호흡하며, 주류는 늘 새롭게 교체된다.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줬던 K콘텐츠의 우수한 글로벌 경쟁력이, K좀비물로 전염되어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반도 스틸컷반도 스틸컷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