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07년 독일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에서 18mm 두께의 경쟁사 TV를 보고 이같이 말했다. LCD(액정표시장치) TV 두께가 15cm였던 당시 한 경쟁사가 IFA에서 공개한 18mm 두께의 LED(발광다이오드) TV는 현장에 있던 삼성전자 임원진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LCD TV 담당 임원이었던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CE부문장)은 전시장을 찾은 이 부회장에게 "상품화되지 않은 전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걸 싸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09년 LED TV를 출시해 전 세계 TV의 트렌드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2012년 김 사장이 막 TV사업부장에 오른 어느 날, 업무책상에서 버튼이 7~8개 있는 흰 리모컨이 발견됐다. 리모컨당 버튼 50~80개가 있던 시절이었다. 이 리모컨은 영화 마니아인 이건희 회장을 위해 특별 제작된 제품으로 이 부회장이 올려둔 것이었다. '소비자 경험을 바꾸라'는 무언의 지시였던 것이다.
김 사장은 "코로나19(COVID-19) 이후 경기불황이 가시화되는 4분기와 내년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면서 불확실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존재라고 밝혔다. 새로운 리소스와 투자, 인재 영입을 책임질 총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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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억눌린 상태에서 풀리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라며 "세계 경기, 소비자심리, 실업률 영향받는 건 4분기일 것"이라며 "내년 전망도 어둡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내년부터 자국 보호가 강해질 것이고 국가 간 무역 마찰로도 나타날 수 있다"면서 "삼성전자는 90% 이상이 해외 매출인데 이런 경향이 심해지면 큰 위기"라고 우려했다.
김 사장은 "전문경영인은 큰 변화를 만들 수 없는데다 빅 트렌드를 보기 어렵고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를 하기 어렵다"면서 "코로나 때문에 트렌드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큰 의사결정이나 인재 영입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리더 역할은 이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며 "검찰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결정을 고맙게 생각하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이날 '프로젝트 프리즘' 1년을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프로젝트 프리즘'이란 마치 프리즘처럼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소비 트렌드에 맞는 '맞춤형 가전' 시대를 만들어가겠다는 삼성전자 (79,200원 ▼500 -0.63%)의 가전사업 비전을 뜻한다. 올 상반기 비스포크를 필두로 한 냉장고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성장했으며 세탁기와 건조기 역시 그랑데AI(인공지능) 출시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35%, 60% 매출 신장을 이뤘다.
김 사장은 "비스포크는 혼수가전의 대명사가 돼버렸고, "'가전을 나답게'라는 말에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며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마케팅으로 바뀐 게 큰 변화"라고 말했다. 한편 사내서 논의되고 있는 재택근무에 대해선 "검토중이지만 결정된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