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김보람 감독.
물론 몇몇 감독들의 선전은 이어졌다. 박찬욱과 봉준호는 건재하고, 홍상수는 시스템 밖에서 여전히 다산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동훈 류승완 윤제균 김용화의 장르영화도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한국영화는 어느새 ‘고인 물’이 되었고, 바람은 멈춘 지 오래 되었다. '기생충'(2019)의 성과 이후 ‘포스트 봉준호’에 대해 여기저기서 이야기하지만 이렇다 할 적임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18년은 특기할 만한 해였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 김보라 감독의 '벌새',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유은정 감독의 '밤의 문이 열린다', 안주영 감독의 '보희와 녹양', 김유리 감독의 '영하의 바람'이 1년 동안 세상에 나왔다. 2019년엔 김한결 감독의 '가장 보통의 연애'가 개봉되었고,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2019)이 나왔으며, 이 와중에 윤가은 감독은 '우리집'(2019)을, 정가영 감독은 '밤치기'(2017)와 '하트'(2019)를 선보였다.
'메기' 이옥섭 감독, 사진제공=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집행위원회
각자 영화적 배경은 다르고 만들어낸 영화들의 결도 다르지만, 몇 가지 특징은 발견된다. 놀랍게도 이들은 데뷔작부터 자신의 영화적 세계가 꽤 탄탄하게 정립되어 있다. 이것은 자신만의 미장센과 이미지를 능숙하게 만들 수 있는 솜씨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들은 배우에게서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데도 뛰어나다. 그리고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이 없으면서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민감하며, 그것을 자신만의 스타일과 장르적 감각 안에서 소화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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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선에서 톤을 만들어내는 윤가은 감독, 예상치 못한 이미지로 전진하는 이옥섭 감독, 나름의 ‘썸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는 정가영 감독, 성장영화의 단단한 서사를 보여주는 김보라 감독, 청춘 세대에 대한 연민을 페이소스와 결합시키는 전고운 감독,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한가함 감독 등 이들의 영화들은 풍성한 다양성을 지닌다.
코로나로 영화 현장과 극장과 영화인들의 삶이 얼어붙으면서 한동안 절망의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젠 회복해야 할 시간이며, 2020년대의 한국영화는 새로운 활기로 가득 차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여성 감독들이 최근 몇 년 동안 확장시킨 한국영화의 지평은 가장 긍정적인 신호다. 부디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자본과 관심이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형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