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겨례하나 경주지회 등 지역 16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북 경주시청 앞에서 전 경주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 직장운동부 고 최숙현 선수의 사망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밝혀줄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최 선수 사건은 경주시청의 철저한 묵인 하에 진행됐다며 진정을 묵살한 관계자를 포함, 폭행과 폭언 등 인권침해 관계자들에 대해 강력히 조치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뉴스1
고(故) 최숙현 선수가 몸 담았던 경주시청 직장운동부(실업팀)의 선수계약서를 본 변호사는 기막혀했다. 선수들이 맺은 계약서는 ‘노예 계약’과 다름이 없었다. ‘을’인 선수의 의무만 수없이 나열돼 있고, ‘갑’인 경주시체육회의 권리는 사실상 무한했다.
'갑'이 필요할 때 언제든 선수 방출 가능...각종 행사도 참석해야
경주시청 직장운동경기부 규정 임용 계약서 중 /출처=경주시체육회
경주시체육회장인 ‘갑’인 임용 계약서는 곳곳이 독소조항이었다. 계약의 해지 부분엔 ‘기타 갑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해도 선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와 함께 규정과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갑’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한다. 계약서의 해석도 ‘갑’에 따라야 한다. 말 그대로 ‘갑’의 명령이 절대적인 셈이다. 서약서에는 ‘계약자가 각종 행사 참석 요청 시 참여한다’라는 규정까지 있다.
사단법인 두루의 최초록 변호사는 “계약해지 부분에서 ‘갑이 필요하다’고 하는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은데, 그 해석을 ‘갑’이 할 수 있도록 했다”며 “아무 때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복종의 의무'까지 사실상 노예 계약...공정위 '표준계약서' 검토
통영시 직장운동경기부 운영 규정 /출처=통영시
트라이애슬론팀을 운영하는 통영시의 경우 운영 규정에 ‘복종의 의무’가 있다. 선수단원은 ‘소속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또 정당한 사유 없이 지시 및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고용은 언제든 중지될 수 있고, 선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서울시는 우수선수로 영입된 선수가 계약기간 중 타팀으로 이적하면 지급된 영입(육성)비의 2배를 물어야 한다. 또 이적의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경기단체 및 산하기관의 규정이 아닌 계약을 우선시 해야한다.
실업팀 간의 이적을 막는 조항은 실업 연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실업육상연맹의 경우 올해부터 최초 실업팀 인단 선수의 계약 기간을 7년으로 못 박았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수도 이적을 위해서는 팀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결국 국민인권위원회는 해당 조항을 바꾸라고 권고까지 했다.
이외에도 여러 자지단체에서 계약서의 해석을 ‘갑’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발견됐다. 최 변호사는 "계약서에 없는 것을 ‘갑’이 정한대로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계약서에 없는 내용은 갑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따라야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운동선수가 생계유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계약서를 받아들었을 때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운동선수도 운동 생활의 특성을 반영한 표준 계약서를 만들고 이를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