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감금, 강간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차를 돌려 모텔로 향했다. A씨는 모텔 접객원이었던 중년 여성에게 도움을 청할까 했지만 오히려 이씨에게 제압당할 것 같아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결국 모텔 방으로 그대로 끌려가고 말았다고 했다.
우선 2심은 A씨가 바닷가에서 감금됐다고 하는 3시간의 행적에 대해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차에 1~2시간 정도 감금됐던 것 같다고 진술했는데, 2시간 감금됐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1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씨가 자신을 제압하면서 목을 졸랐다고 설명했지만, A씨 목 부근에 멍이나 상처, 붓기 등 흔적은 없었다.
2심은 모텔로 들어간 이후의 진술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모텔방 화장실 문에 대해 "잠금장치가 없는 유리문이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문은 나무 재질의 문이었고 잠금장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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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모텔에서 나와 A씨를 근처 식당으로 데려갔다. 당시 식당에 손님과 종업원들이 있었지만 A씨는 여기서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A씨는 "모두 나이 드신 분들이라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2심은 "즉각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봤다.
A씨가 식사를 하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이씨가 따라가 다시 데리고 들어오는 장면이 식당 CCTV에 찍혀있었다. 2심은 "이는 일반적인 남녀 관계에서도 서로의 의견이 갈리거나 다툼이 있을 경우 보일 수 있는 모습"이라며 "위와 같은 모습만으로 성폭력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A씨 진술이 다소 부정확하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도 성폭력 피해사실을 뚜렷하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면 함부로 의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바닷가에서 보낸 3시간 중 1시간의 행적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대법원은 "A씨가 이씨에 의해 상당 시간 공포 상태에 있었다는 점에 비춰 당시 시간의 경과나 흐름을 잘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텔 직원에게 섣불리 도움을 구했다가 이씨에게 제압당할까봐 말을 못했다는 A씨 주장도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목 부근에 졸린 흔적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A씨의 일부 진술은 표현상의 차이일 뿐 이씨가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했다는 진술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체적으로 이씨에게 제압당했다는 점이 중요하지, "목이 졸렸다"는 진술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화장실 문 관련 진술에 대해 대법원은 "모텔 객실의 화장실 문은 나무 재질이고 잠금장치 또한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A씨가 말하는 '잠금장치 없는 유리문'이 정확히 객실이나 화장실 내부의 어디를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이 진술에서 중요한 점은 이씨가 화장실에서도 A씨를 감시했다는 것이고, A씨가 이 점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으므로 의심할 수 없다고 봤다.
특히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자가 식당에 도착해 즉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사정을 근거로 원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이 든다"고 했다.
식당을 떠나기 직전, A씨가 신발이 벗겨진 채 이씨 차량을 뛰쳐나와 다시 식당으로 들어온 뒤 경찰에 신고한 점 등을 보면 A씨 진술을 배척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취지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이씨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