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리뷰] 코로나19에 천만 '부산행'까지…'반도'가 풀어낸 숙제

뉴스1 제공 2020.07.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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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스틸 컷 © 뉴스1'반도' 스틸 컷 © 뉴스1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 큰 스케일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선명한 주제의식까지. '부산행'의 속편에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다 담겼다. 감상적인 결말에 아쉬움이 있지만,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도식적인 구조에 관대한 관객들이라면 흥미롭게 볼만한 볼거리들이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영화 '반도'는 '부산행'의 성공 이후 연상호 감독이 느꼈을 부담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이 고스란이 읽히는 작품이다. 다소 뻔한 '흥행 공식'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 안에서 스케일을 확장하고, 다채로운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해 재미를 주고자 했다.



영화는 4년 전 좀비 바이러스 창궐 직후 누나(장소연 분)의 가족들을 데리고 홍콩행 구출선에 가까스로 몸을 실은 군인 정석(강동원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석은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여자를 뒤로한 채 가족을 이끌고 배를 탔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린다. 감염자였던 누군가가 갑자기 발작을 해 누나와 조카가 있던 객실의 사람들을 공격한 것. 결국 매형 철민(김도윤 분)과 단둘이 생존하게 된 정석은 홍콩에서 비참한 난민살이를 이어간다.

4년 뒤 그런 그에게 홍콩의 한 조직이 접근해 온다. 조직의 보스는 좀비 떼들로 뒤덮힌 '반도'에 2000만 달러가 적재된 트럭이 있다며 이를 안전하게 빼온다면 거기서 나온 수익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요원한 상황에 막대한 재산이 있다면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터. 앞서 대의를 위해 누나와 조카의 목숨을 포기해야했던 트라우마가 있는 정석은 "그냥 포기해버려서 너도 괴롭지 않느냐, 시도는 해봤느냐"는 매형의 말에 설득 당하고, 반도행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유명 영화의 속편들이 그렇듯 '반도'에게 주어진 조건은 그리 유리하지 않다. '부산행'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 안'이라는, 서스펜스에 효과적인 환경이 사라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부산행'이 일으킨 K좀비 열풍은 드라마 '킹덤'과 영화 '#살아있다'를 거치며 신선함은 다소 누그러졌고, 외부적으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극장의 관객 감소 상황도 이겨내야 한다.

불리한 조건을 상쇄하기 위해 '반도'가 내민 카드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 묘사다. '반도'에는 주인공 정석 외에도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가족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철민, 국가와 민족에게 버림받았지만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끈질기게 살아남은 민정(이정현 분), 지옥 같은 반도에서 일생을 살았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했던 준이(이레 분)와 유진(이예원 분), 작동 여부도 불확실한 통신기를 붙잡고 희망을 놓지 않는 김노인(권해효 분)까지. 이들이 위기 속에서 하는 선택들은 영화에 강한 드라마를 부여할 뿐 아니라 주제를 드러낸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어린이와 여성, 노인이 일종의 '구원자'처럼 묘사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부산행'에서 구원자의 역할을 석우(공유 분)와 상화(마동석 분)에게 몰아주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프로타고니스트들과 더불어 안타고니스트들의 면면도 특색이 있다. 인간성을 상실한 채 야만성을 드러내는 황중사(김민재 분), 한가닥 가능성을 엿본 순간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서대위(구교환 분)는 서로 다른 컬러를 가진 악역으로 이야기에 풍부함을 더한다.

'반도'가 정석의 내면 변화를 통해 끝까지 붙잡고 가는 질문은 '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타인을 구해야 하는가?'다. 어찌보면 인간 본성의 근원을 건드리는 질문이다. 영화는 나를 위해서 남을 포기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인간이라면 이런 상식을 뛰어넘는 선택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반도'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이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도식적인 경향이 있다. 특히 정석과 민정이 보여주는 마지막 시퀀스는 '부산행'의 말미 진한 부성애가 표현됐던, 일순간 공유의 뮤직비디오 장면처럼 변해버렸던(?) 예의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그보다 더 나간 느낌이다. 관객들로부터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흥행 영화'가 돼야 했기에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장점과 단점이 다 있는 영화다. 연상호 감독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은 어두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 무척 잘 어울린다. 자신했던 만큼 카체이싱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좀비 떼 이상을 보여줘야만 하는 속편에서 스케일 확장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좋다. 애어른이 돼야했던 준이를 연기한 이레는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성숙함을 드러내 놀라움을 준다. 구김살 없이 해맑은 유진을 연기한 이예원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어두운 세계와 대조돼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정해진 주제를 향해 도식적으로 달려가는 듯한 결말 단계의 전개가 못내 아쉽다. 또한 강동원이 연기한 주인공 정석의 밋밋하고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조금 튀게 느껴진다. 액션 연기는 곧잘해내는 강동원이지만, 정석의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 많은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탓에 몇몇의 이야기는 '하다 만' 느낌도 없지 않다. 러닝타임 116분. 오는 1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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