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핑퐁'에 숨은 '폭력' 지도자들…제 2 최숙현 '우려'

머니투데이 이원광 , 정현수 기자 2020.07.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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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체육계 핑퐁'에 숨은 '폭력' 지도자들…제 2 최숙현 '우려'


①폭력 등 '자격박탈' 체육지도자 97명, 여전히 현장 누빈다



폭력 등으로 자격 취소나 정지가 결정된 체육지도자 80여명의 활동 현황을 정부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체육계는 물론 학교 등에서 여전히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 선수가 지도자 등의 가혹행위로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정황에 비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에도 체육계 고질병으로 꼽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간 ‘핑퐁 게임’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격 정지·취소 지도자 97명 중 82명 활동 현황 파악 불가, 15명은 현직에"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올해 2월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관리 실태’ 조사를 통해 2014~2018년 대한체육회가 징계한 지도자 중 자격증 취소(4명)나 자격증 정지(93명) 처분이 필요한 지도자가 모두 97명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들 중 82명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물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이들 활동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전 의원실과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 97명 중 15명은 자격증 취소·정지 없이 학교 등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격 정지 결정에도 최대 5년 이상 현직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감사원 감사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97명이 지도한 종목은 사실상 모든 종목에 걸쳐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인기 스포츠부터 △당구 △핸드볼 △산악 △컬링 △빙상 △테니스 △태권도 △세팍타크로 △레슬링 △씨름 △복싱 △아이스하키 △수영 △볼링 △배드민턴 △다이빙 △우슈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 중에는 폭력으로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혐의로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지도자가 포함됐다. 이들이 현직으로서 활동하는지 여부 역시 ‘베일’에 쌓여있다.

문체부 "징계자 정보 달라" VS 체육회 "개인정보"…6개월째 '핑퐁게임'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더불어민주당 100인이 함께한 일본의 군함도 역사 왜곡 규탄 결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br>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더불어민주당 100인이 함께한 일본의 군함도 역사 왜곡 규탄 결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결국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체육회) 간 ‘핑퐁게임’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는 올해 2월에서야 징계 받은 지도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한체육회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고, 대한체육회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용기 의원이 문체부와 체육회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이들 기관은 올해 2월부터 현재까지 모두 10차례 이상 공문을 주고 받았다.

문체부는 올해 2월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른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비위 지도자에 대한 현황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신이 없자, 다음달 같은 내용의 공문을 한차례 더 발송했다.

이에 체육회는 문체부가 요청한 징계자 생년월일, 징계회의록, 해당 건 확정판결 여부 등은 개인정보 자료라는 취지로 회신했다. 규정상 ‘개인정보 제3자 정보제공’ 대상인 대한체육회, 시도체육회, 가맹경기단체 등을 제외하고 제공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재차 개인정보보호법 15조1항을 근거로 징계자 정보를 요청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반면 체육회는 행정안전부 문의 결과를 앞세워 응하지 않았다.

전용기 의원은 “각 종목별 협회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동안 체육계 인권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폭력과 폭력 등 각종 비위로 자격이 취소돼야 할 이들이 버젓이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데도 이를 묵과하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②체육계 '솜방망이 징계'…문체부도 체육회도 '강건너 불구경'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이 이달 2일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를 방문, 철인3종 최숙현 선수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강력한 후속조치를 주문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이 이달 2일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를 방문, 철인3종 최숙현 선수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강력한 후속조치를 주문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체육계가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 '솜방망이 징계'의 제도개선안을 마련키로 했지만, 과거 부적절한 징계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무관용 원칙'을 깬 징계도 소급처벌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대한체육회는 오는 9월까지 체육계의 '징계 감경 개선안'을 마련한다. 지난 4월 주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선안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후 이뤄진 후속조치 중 하나다.

감사원은 지난 2월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관리실태'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사대상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등이다. 당시 감사원은 문체부에 '무관용 원칙 준수 여부에 대한 지도·감독 부적정' 의견을 통보하고 주의를 요구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체부는 대한체육회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음에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조사기간에 발생한 104건 중 33건이 징계 기준보다 낮은 수위에서 처분이 이뤄졌다.

33건 중 4건은 선수폭행과 관련됐지만 징계가 '출전정지 3개월', '경고 및 사회봉사 30시간' 등에 머물렀다. 해당 비위 내용은 징계의 하한선이 자격정지 등 1년이다. 폭력과 회계부정에 연루된 모 인사는 징계가 견책에 그치기도 했다.

이는 대한체육회가 2016년 제정한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과도 어긋난다.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직무와 관련한 금품수수 비위, 횡령·배임, 체육 관련 입학 비리, 폭력·성폭력, 승부조작, 편파판정은 징계를 감경, 사면, 복권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말그대로 '무관용 원칙'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나오자 문체부는 지난 3월 말 대한체육회에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4월 회신에서 " 2020년 9월까지 규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를 토대로 관리·감독에 나설 계획이다.

문제는 과거에 발생한 '솜방망이 처벌'이 소급처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용기 의원실 관계자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소급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전해들었다"며 "따라서 추가조치도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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