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상해 폭행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고(故) 구하라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속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상대방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내가 대중에게 알려진 유명인이라면? 상대방이 변심을 넘어 협박이나 폭로할 가능성도 이따금은 생각해봤을 것 같다.
항소심 재판 다음날인 3일 구씨 유족측이 기자들에게 공개한 입장문에는 피해자가 왜 자꾸만 '내 의사에 반했다'고 했는지 소상히 적혀있다. 촬영 당시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동의를 하지 않았고, 추후 기회를 봐서 사진을 지우려고 했지만 사진이 피고인 휴대폰에 있어 타이밍을 못 잡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연인관계의 특성상, 사진 촬영 당시 바로 화를 내면 관계가 악화할 것이 우려됐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조용히 삭제하려고 했다고도 했다.
재판부의 판단을 보자.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 상황이나, 피해자 의사를 추론할만한 촬영 시점 전후로 피해자와 피고인 행동에 비춰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사진이 피해자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을까. 통상 성 관련 불법촬영 사건의 증거는 피해자 진술과 해당 동영상 및 사진 외에 별다를게 없다. 고인은 말이 없으니 피해자 진술이 추가로 나오기는 힘들고, 기존 사진·녹화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추론해 볼 수 밖에 없다.
촬영을 한 피고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피해자가 휴대폰 속 동영상만 삭제하고 사진은 남겨놓은 것을 두고 '왜 사진은 안 지웠느냐' 반문하겠지만, 연예인이라는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일단 동영상부터라도 빨리 지우자는 마음이 컸을 거다.
유족 측 대리인 법무법인 에스 노종언 변호사는 "가해자 중심의 사고"라고 비판했다. 불법 촬영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심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피해자 입장이 무엇보다 우선 고려돼야 함에도, 판사가 과연 이를 고려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이 사건은 최씨에 대한 양형을 결정함에 있어 법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형법 제283조에 의하면 협박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다. 여기에 가중영역을 따져도 협박죄는 징역 3년을 초과하는 형을 선고할 수 없다. 즉 불법촬영 부분에 대한 유죄 판결 없이는 그 이상으로 양형이 나오기 어렵다. 유족측은 현재 대법원에 상고할지 여부를 검찰과 논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