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데 아프나"…최숙현 선수는 "아닙니다" 할 수밖에 없었다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2020.07.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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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23), 최 선수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사진=뉴스1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23), 최 선수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사진=뉴스1


"너는 매일 맞아야 돼", "그냥 안 했으면 욕 먹어", "팀 닥터 선생님이 알아서 때리시는데 아프나? 죽을래?"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23)는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 감독, 팀 닥터 등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체중 조절을 하지 못했다고, 경기 기록이 좋지 않다고, 또는 아무 이유 없이 맞았다.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최 선수가 할 수 있었던 일 은 "아닙니다"라는 대답뿐이었다.

최 선수는 올해 초 팀을 옮기고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하는 등 도움을 요청했지만, 현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지난달 26일 오전 최 선수는 지인들과 어머니에게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부산 동래구의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소하자, 원래 정신병 있고 이상하다고 탄원서까지…"
지도자 등의 폭행과 갑질에 못이겨 23세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청소년·국가대표 출신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시청 직장운동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지도자 등으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갑질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숙현이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만 모르던 아이였다"며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취재진에 요청했다.(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사진=뉴스1지도자 등의 폭행과 갑질에 못이겨 23세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청소년·국가대표 출신 철인3종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오전 부산시청 직장운동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지도자 등으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갑질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숙현이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만 모르던 아이였다"며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취재진에 요청했다.(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사진=뉴스1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폭압에 죽어간 고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해결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에 따르면, 최 선수는 지속적인 폭력과 폭행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 선수의 지인이라고 밝힌 청원인 A씨는 "경주시청에 속해 있었던 기간 동안 그녀는 차마 말로 담아낼 수 없는 폭행과 폭언, 협박과 갑질, 심지어는 성희롱까지 겪어야만 했다"며 2020년 2월, 폭력에 시달리는 그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지인들의 권유로 최숙현 선수는 법적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주시청의 감독, 팀 닥터, 일부 선수들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고, 나아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경주시청, 경주경찰서에 신고와 진정서를 제출했다"면서 "도움을 요청한 모든 공공 기관과 책임있는 부서들은 그녀를 외면했고, 사건의 해결보다는 그것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폭행을 당하던 당시의 녹취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소를 당한 측에서는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여 자신들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며 " 전(前)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내가 때린 것 본적 있냐'는 말을 쏟아내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며 탄원서 작성을 강요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가이드 라인은 '최숙현 선수는 원래 정신병이 있었고 자기 컨트롤이 안되고 정신적으로 이상한 아이다. 본인들은 이런 폭력에 목격한적도 없고 들은적도 없다'는 내용이다.

"콜라 시켰다고 빵 20만원 어치 먹여"…"복숭아 1개 먹었다고 뺨 20회"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선수의 유족은 고인의 사망 후 고인이 전 소속팀 경주시청에서 모욕 및 폭행을 당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사진=고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사진=뉴시스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선수의 유족은 고인의 사망 후 고인이 전 소속팀 경주시청에서 모욕 및 폭행을 당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사진=고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사진=뉴시스
A씨에 따르면 감독, 팀 닥터, 일부 선수들은 '체중 관리'라는 빌미로 최 선수를 다양한 방법으로 폭력을 가했다. A씨는 "운동하면서 때리고 심한 욕설을 하는 것은 일상이었다"고 했다.

청원에 따르면 이들은 식사 자리에서 콜라를 시켰다는 이유로 최 선수의 체중을 측정했다. 체중이 조금 늘자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빵? 그럼 죽을 때까지 먹게 해줄게"라며 빵 20만원 어치를 사와서 "다 먹을 때까지 잠 못 잔다"고 협박했다. 최 선수에게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게 하는 '식고문'을 시켰다.

또 아침에 복숭아 1개를 먹은 것을 얘기하지 않고 체중이 줄지 않았다는 이유로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찼다. 또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하고 밀치는 등 폭행을 20분 넘게 지속했다. 감독은 이 상황을 방관하며 "내가 너네 때렸으면 너희는 진짜 죽었을 것", "팀 닥터 선생님이 알아서 때리시는데 아프나? 죽을래?" 등의 폭언을 했다.

또 최 선수가 살을 못 뺄 때마다 3일씩 굶기기도 했다. 슬리퍼로 뺨을 때리고 "내 손으로 때린게 아니니 때린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폭행 당하는 최숙현 선수 옆에선…"콩비지찌개 끓였습니다"

2019년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음한 녹취록에서도 최 선수가 당했던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이뤄졌는지 드러난다. 감독과 팀 닥터는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상황에서도 최 선수를 위협하며 폭행을 계속했다.

당시 팀닥터 "이빨 깨물어. 일로 와. 뒤로 돌아", "나한테 두 번 맞았지? 너는 매일 맞아야 돼", "그냥 안 했으면 욕 먹어" 등의 말을 내뱉으며 20분 넘게 폭행을 계속한다. 이어 최 선수의 선배로 추정되는 선수를 불러 "너는 아무 죄가 없다"며 뺨을 비롯한 신체 폭행을 이어간다.

충격적인 것은 이를 지켜보던 감독이 폭행을 이어가던 팀닥터에게 "선생님 한잔하시고, 제가 콩비지찌개 끓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둘은 음주를 이어가며 고 최숙현 선수의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차고,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밀쳤다.

감독은 "죽을래?"라는 말과 함께 "푸닥거리 한 번 할까?"라며 위협했고, 최 선수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연이어 답하기도 했다.

한편 대한철인3종협회는 최 선수의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며 다음 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유가족이 제기한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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