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박물관' 만드는 거냐"…갈등 커진 청량리4구역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2020.07.0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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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창촌 일대 건물을 보전하는 것으로 논란이 일었던 '청량리 620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이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계적 절차를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주민공람에 이어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한 후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 입안, 재정비위원회 심의 등을 남겨둔 상태다. '집창촌을 상기 시키는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말아달라'는 주민들과 '건축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만 남기겠다'는 서울시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주민공람, 공청회 절차 진행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동대문구는 지난달 30일 '청량리재정비촉진지구' 청량리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주민공청회는 계획 변경(안) 입안 전 당사자 및 이해관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다. 주요 내용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620-47번지 일대(청량리4구역) 내 기부채납 부지에 예정된 가로공원과 어린이공원을 각각 문화시설, 획지로 변경하는 것이다. 주변 도로폭을 12m에서 6~8m로 축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변경(안)은 전농동620번지 일대에 '청량리 620역사문화공간' 조성을 추진하는 서울시 정책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이곳에 있는 일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건물을 한 채 더 지어 일대를 '여행자 마을' 컨셉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서민들이 살았던 한옥 여인숙을 남기고 옛 정취를 살린 식당, 카페, 주점 등을 조성해 여행자들이 오갔던 흔적을 남기겠다는 취지다.



청량리 620역사문화공간이 예정된 자리에는 현재 과거 병원, 기숙사, 쪽방, 여인숙, 성매매 업소로 활용된 콘크리트 건물 3채와 목조건물 11채가 남아있다. 이번에 가로공원에서 문화시설로 변경되는 이 부지에 새로운 건물 한 채가 들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청량리4구역 내에 조성될 예정인 가칭 청량리620 역사생활문화공간 부지. 부지 내부 건물은 대부분 노후화됐으며 일부 건물은 과거 성매매 업소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청량리4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청량리4구역 내에 조성될 예정인 가칭 청량리620 역사생활문화공간 부지. 부지 내부 건물은 대부분 노후화됐으며 일부 건물은 과거 성매매 업소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청량리4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참석자 "집창촌 복원사업 결사반대"
주민들은 이 계획을 '집창촌 보존사업'으로 받아들여 수개월째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주민들도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에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청회 현장에는 '기억할 과거가 있고 변화할 미래가 있습니다' '청량리 집창촌 복원사업 결사반대!!' 등의 내용의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주민 의견에 반하는 '날치기 공청회'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이들은 이번 변경(안)이 심의를 통과하면 가로공원 부지에 들어서는 문화시설에는 '집창촌 박물관'이 조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변 녹지 공간이 부족한 만큼 기존 계획대로 가로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주민들은 옛 집창촌의 흔적을 남겨 지역이 완전히 개발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까봐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번에도 주민 단체 대표를 포함해 대부분 주민들이 모든 변경내용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량리4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서울시에서는 집창촌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건물들만 리모델링한다고 하는데, 그런 건물조차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인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620-47 일대 풍경. 성매매업소 한 곳이 아직 영업중이다. /사진=조한송 기자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인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620-47 일대 풍경. 성매매업소 한 곳이 아직 영업중이다. /사진=조한송 기자
서울시 "성매매 건물은 모두 철거"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글이 올라와 37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 청원인은 ‘성착취의 민낯을 간직하고 있는 청량리 588과 주변 여인숙이 대체 어떤 보존가치가 있냐’고 호소했다. 또 ‘이곳 건물의 골조만 남기고 리모델링을 한다고 하는데 외관을 바꾼다고 과거의 얼룩까지 지울수는 없다’며 ‘누구나 그곳을 방문할 때 청량리588을 떠올릴 것이고 자녀들이 '여인숙이 어떤 곳이냐' 물었을 때 떳떳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같은 갈등이 주민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시 주거사업과 관계자는 "성매매를 목적으로 사용됐던 건물은 모두 철거하고 60년대 흔적이 남아 건축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들만 리모델링해서 여행자 숙소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좋은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없애자는 게 이번 사업의 취지인데 주민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구는 추후 청량리4구역 재정비축진계획 변경(안) 관련 주민 공람, 공청회 내용 등을 정리해 서울시에 전달할 계획이다. 관련 안이 도시재정비위원회에 상정돼 심의를 통과하면 결정고시 된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주민공람, 공청회 등에서 나온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서울시에 함께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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