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표류한 '차별금지법'…종교계 반발 '최대 변수'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2020.07.0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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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의원 및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조속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장혜영 정의당 의원 및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회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조속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3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차별금지법이 다시 국회에 발의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9일 성별, 나이, 성적지향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막는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하며 힘을 보탰다.

최근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법안 통과 여부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전7기' 차별금지법, 이번에는 통과될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인종 △종교·사상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 행위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피해가 크고 악의적일 경우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도 부과할 수 있다.

비슷한 내용의 차별금지법은 2007년 이후 6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발의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장혜영 의원은 법안 발의에 필요한 국회의원 10명을 가까스로 모았고 해당 의원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여러 차례 시도에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대표적인 이유는 이른바 '동성애 옹호법'으로 바라보는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18대 대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넣었다가 낙선한 뒤 19대 때 입장 표명을 미룬 것도 이런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

국민 10명 중 9명, 차별금지법에 긍정적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근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3일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8.5%였다. 차별금지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73.6%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도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변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사회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며 "인권위가 제시하는 법 시안을 참조해 조속히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공식적인 의견을 낸 것은 14년 만이다.

시민단체에서도 "인권의 역사에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시민들의 높은 열망과 뜻있는 정치인들이 합심해 21대 국회 개원 한 달 만에 이룬 성과"(차별금지법 제정연대)라며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차별금지법은 지속 가능한 사회 만드는 것"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시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기자회견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1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시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기자회견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1
한편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자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독재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에게 항의하는 '문자폭탄'을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별금지법의 미래는 보수 개신교계 등의 반발에 정치권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발의 정족수 10명을 간신히 채운 데다 국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통과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슈퍼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차별금지법 법제화에 책임 있게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이 자유주의적 진보주의라는 이념 지향성을 내세우려면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며 "대부분 유권자에게 '찍히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 같은데 국회의원이라면 옳은 일을 위해 민원성 항의 정도는 딛고 넘어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형태로 유지되려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합의가 이뤄져야 하고 그 합의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모든 사람을 자신처럼 대우하는 것"이라며 "결국 차별금지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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