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서 '골칫거리'로…철강사들은 왜 전기로 불을 껐나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0.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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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인천공장 전기로 모습. /사진제공=현대제철현대제철 인천공장 전기로 모습. /사진제공=현대제철


국내 철강사들이 전기로 열연사업에서 모두 손을 뗐다. 현대제철 (31,500원 ▲50 +0.16%)이 국내 마지막 전기로 열연 설비인 박판열연공장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다.

30일 현대제철에 따르면 회사는 이달 초 당진제철소의 전기로 열연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 안동일 사장이 강조했던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 사업구조 개편의 일환이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전기로 열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국내에선 전기로에서 생산한 열연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포스코와 KG동부제철도 한때 전기로를 통해 열연을 생산했으나 지난 2014년 이후 사업을 접었다. 동부제철은 지난 2014년 10월 연생산 300만톤 규모의 전기로 열연사업을 접고 매각에 나섰다. 포스코는 2015년 3월부터 광양제철소 전기로 설비를 가동 중단했다.



국내 철강사들이 전기로 열연 생산을 속속 접는건 수요가 적고 가격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기로는 가동과 중단이 용이해 생산량 조절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동국제강 등 봉형강, 철근 등을 생산하는 전기로 업체는 코로나19(COVID-19) 위기에도 탄력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며 실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고로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열연은 전기로뿐만 아니라 고로에서도 생산되는데 전기로 열연은 고로 열연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과 품질 모두 떨어진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로 열연의 원가는 고로 열연 대비 톤당 3만~4만원 가량 높다. 전기를 이용해 고철을 가열하고 쇳물을 생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이후 산업용 전기료가 크게 상승하면서 전기로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산업용 전기료는 2010년 kWh당 76.7원으로 주택용 전기료인 119.9원의 63.9% 수준이었지만 매년 5~10% 정도 대폭 인상됐다. 전기로 업체는 매년 수백억원 이상의 원가 부담을 추가로 떠안아야 했다. 산업용 전기료는 지난해엔 105.8원으로 주택용 전기료 104.8원을 역전했다.

원자재인 철스크랩 가격 역시 크게 올라 전기로의 적자폭을 키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철스크랩 가격은 29만원이다. 2015년 15만원 수준이던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 코로나19 여파로 미국과 유럽에서 철 스크랩 공급이 끊긴데다 중국 제강사들의 수요는 급증하면서 당분간 철스크랩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품질 면에서도 고로 열연이 앞선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엔 고로 부산물이나 고철을 재활용하기 위해 전기로를 도입했지만 고로 제품에 비해 품질은 낮으면서 원가는 높아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철 수급이 원활하고 시장 규모가 받쳐주는 미국이나 일본은 전기로 열연으로 성공하고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시장 규모와 원자재 수급 상황은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아 사업을 접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제철은 열연공장 매각을 결정했지만 매입하려는 기업이 나타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KG동부제철이 2014년 매물로 내놓은 당진 전기로는 수년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17년 10월 이란 카베스틸과 1200억원에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지난해 말 파키스탄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협상을 시작했지만 지연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전기로 열연이 쓰이는 건자재나 강관용 구조재 등의 수요도 줄었다"며 "경쟁력이 있는지 고민하던 차에 시장 상황과 맞물려 사업을 접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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