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1년…자기 발등 찍은 사무라이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김성은 기자, 권혜민 기자, 박소연 기자 2020.06.29 06:30
글자크기

일본 수출규제 1년 (上)

편집자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재료를 무기화하면서 기습적인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1년이 됐다. 사태 초반의 우려와 달리 일본의 강공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일본이 추가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지난 1년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본다.

사무라이의 일격, 받아친 삼성…"韓 반도체 잠깼다"
수출규제 1년…자기 발등 찍은 사무라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구매담당 A전무는 지난해 이맘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1년 전 주말이었던 6월30일 산케이신문의 보도로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규제 방침이 알려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내부검토 결과 최악의 경우 3개월 안에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보고됐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묶은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감광액)·불화 폴리이미드는 그만큼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였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보고를 받자마자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A전무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차질 없이 라인 가동을 유지하느냐가 당시 최대 현안이었다"며 "1년만에 공급망을 재정비하고 이만큼 국산화 성과까지 거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지난 1년 동안의 적극적인 국산화와 공급 다변화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며 "일본이 잠자고 있던 한국을 깨웠다"고 말했다.



수출규제 1년…자기 발등 찍은 사무라이
◇일본 공세에 체질개선 속도…국산화·다변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에서 국산화 성과가 속속 나오면서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 규제가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년의 성과는 삼성전자 (82,400원 ▲1,600 +1.98%)SK하이닉스 (183,000원 ▲4,800 +2.69%), LG디스플레이 (10,750원 ▲170 +1.61%)를 중심으로 일부 대기업의 성공 신화에 젖었던 업계와 정부, 학계가 일본 아베 정부의 선전포고를 계기로 기술 자립과 공급망 다변화에 나선 결실이라는 얘기다.


특히 지난 반세기 가까이 일본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자조했던 소·부·장 업계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진 게 성과로 꼽힌다. 최근의 성과는 지난 17일 공개된 SK머티리얼즈 (402,900원 ▼10,100 -2.45%)의 고순도 불화수소 가스(반도체 기판인 실리콘웨이퍼에 그려진 회로도에 따라 기판을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 필수적인 소재) 국산화다. 순도 99.999%를 뜻하는 '파이브나인' 이상의 불화수소 가스는 그동안 해외에 전량 수입했다. SK머티리얼즈는 연생산량 15톤 규모로 2023년까지 국산화율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반도체 기판의 불순물을 씻어내는 데 쓰이는 액체 불화수소도 지난해 수출규제 조치 직후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로리지가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를 국산 제품으로 100% 대체한 상태다.

반도체 기판을 만드는 데 쓰는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는 벨기에·독일 등으로 수입선이 다변화됐다. 국내에서는 동진쎄미켐 (48,250원 ▲1,650 +3.54%)이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생산라인을 올초 증설하기로 했다. SK머티리얼즈도 내년까지 공장을 완공, 2022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5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는 아직 국산화 전이지만 미국 듀폰이 충남 천안에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

또 다른 규제 품목으로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불화 폴리이미드도 국산화 성과가 나왔다. 코오롱인더 (37,400원 ▼600 -1.58%)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SKC (111,200원 ▼8,400 -7.02%)도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수출규제 1년…자기 발등 찍은 사무라이
◇제꾀에 넘어간 일본…"삼성 마음 돌릴 선 넘었다"

이런 성과는 대일 수입현황에서도 숫자로 확인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5월 일본에서 수입한 불화수소 규모가 403만3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43만6000달러보다 85.8% 줄었다. 지난해 7월 일본 수출규제 직후 올 5월까지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 비중도 9.5%로 전년 같은 기간(2018년 7월~2019년 5월) 42.4%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 기간 일본산 포토레지스트 수입 비중도 92.8%에서 86.7%로 줄었다.

일본 현지에서는 수출규제의 타격이 오히려 자국 업체를 향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세계 불화수소 1위 업체인 일본 스텔라케미파의 경우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12%, 32% 줄었다. 이 업체는 지난해 결산보고서에 "수출규제 영향으로 한국업체에 공급하던 물량이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도쿄신문은 지난 23일 서울 특파원 칼럼에서 "수출규제가 일본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기업들이 비싼 가격에도 수율 저하를 우려해 고품질의 일본 소재를 써왔는데 수출규제가 이를 흔들었다"며 "한국 기업이 다시 일본산 소재로 돌아가기 쉽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우 재료나 소재에 맞춰 공정을 조정하고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다시 일본제로 돌아가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규제 1년…자기 발등 찍은 사무라이


◇민·관·학 삼각공조…"협력 고삐 늦춰선 안돼"


반도체 소재 공급 안정화와 국산화가 이뤄질 수 있던 배경에는 업계의 신속한 대처 외에 정부의 과감한 정책 지원과 학계의 연구 성과라는 삼각공조가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향후 7년 동안 7조8000억원+α 규모의 재정을 투입키로 하는 등 기업의 원활한 물량 확보를 위한 세제·금융·통관·인허가 단축 패키지 정책을 냈다. 올 들어서도 새로 편성한 소·부·장 특별회계 2조725억원 중 1조2850억원(62%)을 지난 5월말까지 조기집행했다.

정부는 올해 소·부·장 산업 핵심관리 품목을 100개에서 338개로 확대하고 2022년까지 연구개발(R&D)에만 5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등의 추가 지원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지난 1년은 위기 상황에서 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수세적으로 공급안정화에 주력했다"며 "앞으로의 대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공세적으로 전환, 소·부·장 산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워내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액체 불화수소 중국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수출규제의 여파를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민관 협력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산업계의 급소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극동대 석좌교수)는 "특히 반도체 투자에서 70~80% 비중을 차지하는 장비 분야의 자립이 시급하다"며 "일본과 미국에 의존하는 장비 국산화는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김성은 기자, 세종=권혜민 기자

무기로 삼은 '화학제품' 수출 '뚝'…제 발등 찍은 일본
/사진=AFP/사진=AFP
"한번 뺏긴 것을 되찾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지난 5월 일본 내 불화수소 업체 모리타화학공업의 한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에 이같이 말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수출 관리 엄격화)로 한국향 판매가 30% 가량 감소세를 보인데 따른 불만이었다. 일본 내에서조차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일본에 더 큰 타격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日 5월 한국향 화학제품 수출 '급감'…실적 악화로 日 기업들 잇단 '불만'

26일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규제 적용을 받는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제품' 항목의 지난달(5월) 한국향 수출액은 715억4600만엔(약 8008억원)으로 전년 대비 27.9% 낮아졌다.

코로나19를 감안해 전세계향 수출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화학제품의 5월 전세계 수출액이 6161억 4300만엔(약6조8962억원)으로 7.0%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같은 기간 감소폭이 더 컸다.

특히 해당 항목은 일본의 한국향 수출 규제가 본격화한 후인 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여오는 중이다.

수출규제 타격을 받은 일본내 기업들 사례도 보도되고 있다.

전세계 고순도 불화수소 1위 기업 일본 스텔라케미파의 2019회계연도(2019년4월~2020년3월) 연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한 19억엔이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2% 감소한 337억엔, 영업이익은 32% 줄어든 24억엔으로 집계됐다.

니혼게이자이는 "미·중 무역마찰과 일본 정부의 수출 관리 운용 재검토 등으로 주력 부문 수출 판매가 줄었다"고 해석했다.

코로나19(COVID-19)까지 덮친 올 한 해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스텔라케미파는 올해 회계연도 기준 연결 순이익은 지난해 대비 27% 줄어든 14억엔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는 "글로벌 액정 패널 및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의 첨단 소재를 써왔던 이유는 고품질인데다 안정적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패널과 반도체는 100단계가 넘는 섬세한 제조 공정을 거치므로 일부 단계의 재료 변경만으로도 불량품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수율 저하를 우려해 고품질의 소재를 계속 쓰는 관습이 있었지만 이 관습을 흔든 것이 일본의 수출관리 엄격화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이 국내 소재 기업들로부터 물품을 조달받기 시작하면서 일본 내 전자 부품 영업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조달처로서 일본 기업 순위가 내려가고 있다"며 불만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가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음을 일찍이 일본 내 연구기관으로부터도 지적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종합연구소'가 냈던 '일본의 수출관리 강화 계기로 한국의 탈일본이 추진되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일본 수출관리 강화를 계기로 한국에서 국산화, 제3국으로부터의 수입 진행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본 기업은 방관 중"이라며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일 관광객 4000만→500만…쪼그라든 아베의 꿈, 신호탄은 한국의 '보이콧'

/사진=AFP/사진=AFP
수출규제의 직접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간접영향을 받은 분야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방일 한국인 관광객 수의 급감이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1월 77만9383명에서 수출규제 공표 다음달인 8월 30만8730명으로 60.4% 줄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48.0% 줄어든 값이었다. 한국인들의 '안사고 안간다'는 보이콧의 영향이 컸다.

이후 이 수치는 10월 19만7281명까지 꾸준히 줄어 지난달에는 약 20명을 기록했다. 다만 3~5월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탓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당초 '외국인 관광객 4000만명 시대'의 꿈을 좌절시킨 신호탄이 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팬데믹(대유행) 탓에 올해 일본인 관광객이 500만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보이콧의 영향은 식음료, 의류,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번졌는데 지난해 10월 일본 맥주 한국 수출량은 '제로'였다. 이는 1999년 6월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일본 내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지난 23일 도쿄신문은 '타격은 일본기업에'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일본 정부 대응의 문제는 수출관리 강화 배경에 징용공(징용 피해자) 소송이 있다는 점"이라며 "한국 정부 대응 촉구 의도를 이해할 수 있으나 '경제의 급소'를 찌르는 방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의문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런 가운데 일본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출마에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이다. 유 본부장이 직접 지난 24일 "WTO 사무총장은 특정 소송에서 특정 국가를 대변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한국과 무역분쟁 중인 일본으로서는 껄끄러운 사실일 수밖에 없다.

일본 FNN 방송은 유 본부장의 출마 소식을 보도하면서 "유 본부장은 일본의 한국 수출 관리 강화에 강하게 반발, 한국 정부의 WTO 제소 등을 주도해왔다"며 "선출되면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성은 기자

"아베, '반도체강국' 단잠에 취한 우리 깨웠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아베는 잠자고 있는 우리를 깨운 스승입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극동대 석좌교수)은 아베가 한국 반도체 산업을 바꿨다고 단언했다.

노 회장은 지난 26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아베 정부의 공격으로 1년 전 촉발된 반도체 수출규제는 '메모리 강국'이란 단잠에 취해있던 우리 기업, 정부, 국민들을 모두 변화시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회장은 "역사 속에서 보면 진정한 스승은 천사의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 때론 전쟁의 적장이나 역병의 모습으로 오기도 한다"며 "우리 반도체 산업에 일본이 공격할 급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국산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2018년 말 발족한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수장을 맡아 '세계 반도체 1위 국가'라는 간판에 가려져 있는 후진적 소재·장비·부품산업 육성과 반도체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아베 정부 덕분에 지난 1년간 반도체 산업에 실질적 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노 회장은 "반도체 대기업들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절체절명의 위험에 직면하면서 상당한 변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부·장 업체들이 삼성·SK하이닉스로부터 새로운 기술 개발 제의나 제품 테스트 요청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구체적 변화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한국 반도체 대기업이 일본 수출규제에 잘 대응했다는 평가도 내렸다. 그는 "결과적으로 지난 1년간 삼성과 SK는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슬기롭게 잘 대응했다고 본다"며 "30년 넘게 아무 비판 없이 일본에 소재·부품·장비를 90% 이상 의존해왔는데, 이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정부에게도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소·부·장 업체들을 조사해보면 정부 정책이 피부에 와닿고, 실제 기회도 많아졌다는 평을 듣는다"며 "2년쯤 후에는 더 구체적인 정책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다만 노 회장은 소·부·장 다변화 및 국산화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며, 일본이 추가적인 수출 규제로 우리의 급소를 공격해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경계를 풀지 말 것을 주문했다.

노 회장은 "일본이 지난해 내놓은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종 규제는 극히 일부에 그친다"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급소가 너무 많다"고 경고했다.

특히 장비 분야의 자립은 시급하다. 그는 "소재·부품과 달리 장비는 반도체 투자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80%로 높은데 일본·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향후 상대국이 무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며 "장비 국산화가 까다롭고 긴 시간이 걸리지만 더욱 주력해서 해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아베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감행한 대한국 수출규제는 결과적으로 일본 기업에만 타격을 입힌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일갈등이 지속되는 한 아베 정부가 이를 반복할 가능성은 없지 않다.

노 회장은 "애초에 일본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우리 경제의 급소를 건드린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 실패와 무관하게 규제를 더 확장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결국 기업은 제품의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 소·부·장 업체가 혁신을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마지막으로 국내 소·부·장 업체가 경쟁력을 갖추고 생태계를 확장하려면 국내 대기업과 거래하면서도 자유로운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소·부·장 업체들이 기술개발을 해도 삼성·SK가 사주지 않으면 사장된다"며 "국내 시장은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나가 다양한 밸류체인에서 한국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창출하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이 26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박소연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