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예상 깬 '이재용 불기소 권고'…檢 내부 고민은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20.06.29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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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 두번째)이 19일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의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경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 두번째)이 19일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의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경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과반수로 불기소 의견을 권고하면서 검찰이 이를 받아들일 지 고민에 빠졌다. 검찰이 스스로 만든 제도를 무력화해선 안된다며 불기소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압박도 적지 않지만 검찰 수뇌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 결정까지 내렸던 만큼 수사 정당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6일 개최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9시간 논의 끝에 이 부회장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3명의 심의위원이 표결에 참여한 결과 10대 3의 압도적 다수가 이 부회장의 불기소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이날 심의위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계속 여부 △이 부회장, 김종중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삼성물산 주식회사에 대한 공소제기 여부가 논의됐다.



이같은 결과가 나온 데는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등으로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장기간 재판을 받게 되는 게 국민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심의위 결과가 나온 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와 검찰수사심의위 의견을 종합해 최종 처분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냈지만 내부적으론 침통한 분위기다. 수사심의위 개최 전 기소 의견으로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았다. 1년 8개월 간 수사 과정에서 확보해온 다수의 증거 자료를 통해 심의위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다. 앞서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당시 법원이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소명됐고 재판에서 심리해야 한다며 기소 타당성을 인정한 바 있다는 점도 수사심의위에서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해왔다.

수사심의위가 검찰의 예상을 깨는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앞서 열렸던 수사심의위에선 결정 후 1주일 안에 검찰이 수사심의위 결정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지만 이번엔 1주일 이상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의 불기소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하더라도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애초에 이 사건을 수사심의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던 데다가 수사심의위 논의 내용이 불기소를 도출할 만한 합리적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에서다.

이 부회장에 대해 적용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사실들이 워낙 복잡하고 방대한 자료들을 압축해 제시하다보니 심의위원들의 이해도가 떨어져 법리적 판단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수사심의위 도입 취지와 맞지 않게 이 부회장에 대한 이번 결정이 여론재판으로 흘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사심의위를 마치고 나온 한 위원은 "위원들이 굉장히 고민을 거듭해 내린 결정"이라면서도 "이 부회장과 삼성도 이번 결정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들의 잘못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충고에 가까운 지적을 내놨다.

검찰 역시 기소를 포기하는 것은 자기모순이기에 결국 이 부회장의 불구속 기소를 선택하게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이미 기소를 염두해둔 것이기에 이 부회장 기소에 실패한다면 구속영장 청구에 의견 일치를 본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지휘부가 모두 수사 실패에 책임을 질 일이기 때문이란 논거다.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매년 각 검찰청에 대한 사무감사에서 검찰이 인지수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뒤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한 사건은 검사의 중대한 과오로 지적되고 검사인사에 반영된다"며 "경우에 따라 징계를 받을 만큼 직접 수사해서 구속영장 청구까지 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윤석열 총장과 이성윤 지검장,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 및 수사팀 전원 사표쓰고 검찰을 떠나야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심의위 제도가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검찰 스스로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검찰이 제도를 자의적으로 운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검찰이 2018년 초 제도 시행 이후 진행된 총 8차례의 수사심의위 권고를 모두 따랐다는 점도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윤 총장과 한동훈 검사장 등 이 부회장 수사를 이끌었던 '특수(특별수사)부 라인'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기소 강행 주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이 사건 성립이 되지 않는데도 장기간 무리한 수사를 통해 유죄 심증으로 기소를 강행하려 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해 정식 재판으로 간다고 해도 '무리한 수사'란 이 부회장 측 반격에 명분을 주게 된 측면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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