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부조리극을 멈추는 길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6.29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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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기소 여부를 두고 지난 26일 열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 결과에 대한 반응을 두고 하는 얘기다.

 수사심의위 이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기소를 원하는 측의 ‘불복선언’이 예견됐는데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수사심의위 내부 논의에서 10대3으로 ‘기소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볼 때 검찰의 주장은 강했지만 입증이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론컨대 심의위원들은 발언 내용이나 신분의 비공개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론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실제도 그랬지만 심의 후 결국 자신들의 발언내용과 신분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조심스러웠으리라.



 그럼에도 불기소 의견을 압도적으로 내린 데는 논의내용이 공개되더라도 자신들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더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재벌정서가 강한 현실에서 소위 ‘얻어먹을 것이라곤 욕뿐’인 그 자리에서 기소 반대 의견을 던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기소에 찬성한 입장의 사람들은 확실히 유죄라는 심증을 굳혔기 때문에 입증은 그렇게 중요하게 느끼지 않은 듯하다.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않은 심의위원들의 자질론부터 수사심의위의 무용론까지 거론하며 결과를 부인한다. 이재용, 삼성과 관련해선 절차의 정당성도 중요히 생각지 않는다.


 일부 정치권 인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검찰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달라진다. “윤석열 아웃”을 외친 그들이 “윤석열 파이팅”을 외치는 부조리극을 연출한다.

 이들의 인식변화를 보면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하다는 표현이 부족해 보일 정도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우선주의, 피의사실유포 금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도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만 마주하면 ‘그 원칙은 X나 줘버려라’는 식이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부조리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재용은 이유불문하고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목적론만 뚜렷하고 그것에 흔들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실이나 시스템과 원칙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지부조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재용 부회장을 꼭 처벌해야겠다면 다음 하나만 입증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2016년 일부 언론에서 ‘국민연금, 삼성그룹 합병안 밀어주고 5900억원 평가손실’이라는 보도다.

 당시 보도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이재용은 덜 잃었는데, 국민연금이 5900억원을 손해 봤다’는 프레임이었다.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을 댔다는 괘씸죄는 그 이후 어떤 해명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철옹성 같은 프레임을 형성했다.

 하지만 합병 직후(2016년 11월18일 종가 기준)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주식시장 침체기에 국민연금은 2253억원, 이 부회장은 5582억원의 손실을 봤었다. 합병 후 이 부회장이 국민연금보다 3300억원가량 손실을 더 본 게 팩트다.

 비교대상의 덧셈과 뺄셈을 잘못한 결과였던 이 보도는 그러나 ‘반재벌 정서’를 가진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준 것으로 그 이후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에도 인식이 고쳐지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또 일부 시민단체 전문가는 자본시장법에도 없는 상장사간 합병비율 산정방식(순자산가치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고 불법이라며 몽니를 부렸다.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결과를 내는 풀이방식만이 정답이라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혔다.

 나와 출발선이 다른 ‘이재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법이 완벽히 정비되지 않은 시점에 법의 빈틈을 찾아 부를 늘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자신이 사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은 것의 어느 한 지점이 오염돼 그 이후 흐름이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따져볼 수 있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사회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뜨거운 열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냉정함을 잃은 과열상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선한 의지가 발현되도록 모두 함께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길 바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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