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4세대가 온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0.06.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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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바이투게더,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케이팝 4세대 논의가 활발하다.

갑작스레 불거진 이슈는 아니다. 오히려 2018년 즈음부터 케이팝을 다루는 국내외 언론과 팬덤을 중심으로 꾸준히 회자되던 이야기들이 이제야 수면위로 올라왔다 보는 게 옳다. 특히 지난 5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들이 앨범 소개글을 통해 자신들을 스스로 ‘4세대 아이돌’이라 지칭하는 이채로운 모습을 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데뷔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5월 발매한 두 번째 미니앨범 [꿈의 장: ETERNITY]에서 자신들을 ‘비주얼과 실력 모두 균형 잡힌 4세대 아이돌의 선두 주자’라 소개했다. 5월 19일 싱글 ’Who Dis?’를 발매하며 데뷔한 걸 그룹 SECRET NUMBER(시크릿넘버) 역시 ‘이미 해외 유명 언론매체들을 통해 ‘2020년 기대되는 유망주'로 주목 받고 있는 시크릿넘버가 ‘4세대 걸그룹' 대열에 합류했다’는 표현을 썼다.

재미있는 건 이들 모두 호기롭게 자신들이 4세대임을 천명했지만 그래서 그 4세대가 무엇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는 점이다. 비주얼과 실력 모두 균형 잡히거나 해외 유명 언론 매체가 주목했다고 해서 저절로 4세대 배지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 앞에 4세대를 붙였다. 이렇듯 정의도 어렵고 여전히 논란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케이팝 세대론이 부각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마치 ‘4차 산업혁명’이나 ‘뉴노멀’처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어딘가 이전과는 다른 지금을 이끄는 선봉에 서 있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래서 4세대가 뭐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팝 4세대는 이제 막 시동을 건 현재 진행 중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간과 기록이 이미 증명한 앞선 세대론은 비교적 설명이 쉽다. H.O.T, S.E.S, 핑클, 젝스키스, 보아로 케이팝 1세대를 이야기하며 10대 위주의 팬덤과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해외진출 성공 사례를, 엑소와 여자친구,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로 3세대를 이야기하며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인종과 국경을 넘어선 팬덤을 논하는 건 이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
다만 이들이 신에 남기고 간 선명한 흔적들은 지금 스스로 자신들을 4세대라 소개하고 있는 또는 새로운 세대로 전이되어 가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 아래 놓여있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단초를 제공한다. 일례로 2018년과 2019년 사이 새롭게 데뷔한 그룹들의 규모를 보자. 데뷔 초 12인조였던 3세대 대표그룹 엑소와 11인조 데뷔를 목표로 했던 ‘프로듀스’ 시리즈의 영향으로 10명 안팎의 대인원 구성이 당연했던 케이팝 그룹들은 최근 확연히 몸집을 줄였다.



2019년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있지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5인조, (여자)아이들은 6인조다. 데뷔 전부터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한 뒤 데뷔하는 것도 최근 굳어진 풍경이다. 그 결과 데뷔 앨범을 빌보드 200 140위에 올린 투모로우바이투게더나 데뷔 100일만에 총 5개 도시를 도는 북미투어를 개최한 에이티즈가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 유튜브, V앱, 틱톡 등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와 상관없이 케이팝을 실시간으로, 더욱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채널들의 성장과 그와 더없이 친밀하게 교류한 3세대의 노력이 있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아이즈원, (여자)아이들, 이달의소녀 등을 중심으로 최근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충성도 높은 여성 아이돌 팬덤의 등장 역시 차후 4세대를 이야기하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유의미한 변화상 가운데 하나다.

사진제공=KQ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KQ엔터테인먼트
이렇게만 보면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이들이 좌충우돌 고생도 논란도 많았던 이전 세대에 비해 비교적 쉽고 정돈된 출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3세대에 진입하며 부쩍 몸집을 불린 케이팝 시장은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 모두에서 전에 없는 과포화 상태에 놓여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신인 그룹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새롭게 확보하기 어려운 고인 생태계를 만들었다. 실제로 보통 1년차 전후를 신인 그룹이라 부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데뷔 만 2년차, 활동 3년차까지를 신인 그룹이라 부르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또한 과거에는 1~2년 사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금세 그룹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오마이걸, 몬스타엑스처럼 4 ~6년차에 커리어 하이를 달성시키는 그룹이 늘어나며 이러한 역시 전반적으로 판단의 흐름이 바뀌어가는 추세에 놓여 있다.


유예된 시간은 고스란히 업계의 부담으로 내려 앉았다. 그룹의 성패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기간이 늘어난 만큼 소속사의 근성과 자본이 언제 올지 모르는 그룹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가장 큰 실력이자 능력이 되었다. 이는 소속사와 가수 간 합의 하에 채운 족쇄처럼 여겨지던 7년 표준계약서를 불과 10여년 만에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더불어 전세계로 뻗어나가며 새롭게 열린 가능성과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던 업계에 들어 닥친 코로나19의 여파는 한동안 4세대 논의만큼이나 크게 케이팝신을 좌우할 가장 강력한 아젠다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케이팝 4세대가 온다. 그들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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