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원 IPO 새역사 쓴 최태원의 바이오 '뚝심'

머니투데이 김근희 기자 2020.06.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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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청약 역대 최고 기록…최태원 바이오 뚝심 결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SK그룹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SK그룹


SK바이오팜이 31조원에 달하는 시중 부동자금을 빨아들이며 국내 기업공개(IPO) 역사를 새롭게 썼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최태원 SK (178,600원 ▼4,000 -2.19%)그룹 회장의 28년 바이오 뚝심이 주식시장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바이오 사업 부문을 세분화·전문화하고,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탄탄한 수직계열화를 이뤄낸 것이 역대급 청약흥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SK바이오팜, 신약 개발부터 판매까지 독자진행 '국내 최초'
25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24일 이틀간 진행된 SK바이오팜의 공모주 청약에는 30조9000억원이 몰렸다. 역대 최대치인 2014년 제일모직 30조649억원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경쟁률은 323.02대 1을 기록했다. SK바이오팜은 다음달 2일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SK바이오팜이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기술력, 미국 직접판매 전략, SK그룹의 지속적인 투자 덕분이다. SK바이오팜은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신약개발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 허가를 획득했다.



지난달부터는 미국 법인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엑스코프리 직접 판매에 나섰다. 미국 시장에서 직판체제를 구축한 국내 기업도 SK바이오팜이 처음이다. 소수의 전문의들만 처방할 수 있는 뇌전증 치료제 특성을 이용해 영업사업 100여 명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수익을 온전히 챙기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뇌전증 시장 규모는 33억달러(약 4조원)으로 세계 뇌전증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하고 미국 제약사 재즈파마슈티컬스에 기술수출한 수면장애신약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는 지난해 7월 미국에 출시됐고, 지난달부터 유럽 판매가 시작됐다. 미국 출시 첫해 수노시 매출은 370만달러(약 44억원)이고, 올해 1분기 매출은 200만달러(약 24억원)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아직 매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속해서 처방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시장에 안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즈파마슈티컬스는 수면장애질환 분야 글로벌 1위 회사인 만큼 앞으로 판매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중추신경계 신약후보물질 6개 모두 임상에 진입하는 등 후속 파이프라인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31조원 IPO 새역사 쓴 최태원의 바이오 '뚝심'
최태원 회장 28년간 바이오 투자 결실
SK바이오팜의 이 같은 성장은 28년간 이어진 최태원 회장의 투자 덕분이다. 최 회장은 바이오를 미래산업으로 보고 1993년부터 바이오 투자를 단행했다. SK는 2007년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신약 개발 조직을 지주사 직속으로 뒀다.

2008년 SK가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드존슨에 기술수출한 뇌전증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FDA 허가를 받는데 실패했을 때 그룹 안에서는 바이오 사업에 대한 회의론이 일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그해 오히려 SK라이프사이언스의 연구개발(R&D) 조직을 강화했고, 2011년에는 신약개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SK바이오팜을 설립했다.

2015년에는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하고 의약품 생산으로 사업 분야를 넓혔다.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수직계열화에 나선 것이다.

이후 SK바이오텍은 2017년 다국적 제약사인 BMS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통째로 사들였다.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SK바이오텍,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3사를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했다.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들을 하나로 합쳐 규모의 경제와 함께 효율 극대화에 나선 것이다.

화학사업과 제약사업을 함께 영위해오던 SK케미칼 (44,200원 ▼550 -1.23%)은 2015년 혈액제재 사업을 분사해 SK플라즈마를, 2018년 7월 백신 사업 부문을 분사해 SK바이오사이언스를 신설했다. 바이오 의약품인 백신과 혈액제재 사업을 떼어내 전문화시키고 주력인 케미칼(화학합성) 의약품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SK의 제약·바이오 계열사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르면 9월 코로나19 백신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SK플라즈마도 코로나19 혈장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SK팜테코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발주한 필수 의약품 확보 사업의 핵심 공급처로 선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들기 때문에 꾸준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인프라와 자금력이 부족해 한계가 있었다"며 "대기업인 SK의 지속된 투자 덕에 SK바이오팜을 비롯한 바이오 계열사들이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사진=SK바이오팜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사진=SK바이오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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