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금속노조, 현대重·대우조선 유럽 합병 심사에도 개입한다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0.06.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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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3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정문앞에서 대우조선지회 조합원이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에게 현장실사 거부 의사를 오전에 이어 재차 전하고 있다./사진=뉴스1지난해 6월 3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정문앞에서 대우조선지회 조합원이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에게 현장실사 거부 의사를 오전에 이어 재차 전하고 있다./사진=뉴스1


한국 금속노조가 유럽연합(EU)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32,700원 ▼600 -1.80%) 합병 심사 과정에 개입한다. EU 심사는 양사 합병이 성사되기 위해 넘어야 할 최대 분수령인데 금속노조가 이 심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양사 합병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EU는 특히 양사가 합병해 글로벌 조선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룡 조선업체'가 생기는 것에 부정적이어서 금속노조 개입을 통해 합병 불허의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 조선업계 불황 탈출을 위해선 양사 합병을 통한 세계 1위 조선소 탄생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Commission)는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심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3자 지위'를 부여한다고 통보했다.

금속노조는 이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EU 심사 관련 각종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또 양사 합병과 관련해 EU가 주관하는 청문회가 열릴 때에도 이해당사자로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알릴 수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 2월 대우조선해양 지회와 함께 EU에 제3자 지위 등록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속노조는 현대중공업은 물론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계열사들과 조선 기자재업체까지 소속돼 있다. 때문에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앞장 서 EU의 합병 심사에 개입한다면 대우조선해양 지회가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앞으로 금속노조는 제3자 지위를 지렛대로 양사 합병 반대 의견을 EU에 적극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와 대우조선 지회는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본계약을 체결한 이후 이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크고 작은 파업을 벌였다. 지금까지 합병 관련 금속노조의 활동범위는 국내였지만 이제 무대가 유럽으로도 넓어진 셈이다.


업계에서는 EU가 금속노조의 제3자 지위 관여를 지렛대로 양사 합병 불허를 위한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U에는 세계 상선 운영 상위 25개국 중 10개국이 포진해 있다. EU 입장에서는 합병을 통해 배를 만들어주는 '을'의 덩치가 커지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EU 집행위원회 내부에서는 "양사 합병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말도 나왔다. 심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인데, 금속노조의 제 3자 지위 활동은 EU 입장에서는 '기다리던 일'일 수 있다.

EU 심사가 제대로 풀리지 못할 경우 양사 합병은 표류하게 된다. 합병 심사 대상국 중 1곳만 불허를 내려도 양사 합병은 물 건너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부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6개국에서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다. EU를 포함, 중국과 카자흐스탄, 싱가포르에 기업결합심사 신청서를 냈고 일본에서도 올해 3월부터 기업결합 심사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첫 승인을 받았다. EU는 합병 심사 기한을 오는 9월 3일로 제시해놓은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양사 합병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EU 합병심사가 최대 승부처인 상황"이라며 "다만 그동안 노조 등 제3자 관여가 EU 심사 과정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심사에도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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