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문제를 형사처벌? 국가권력 남용 논란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박소연 기자 2020.06.24 05:30
글자크기

이재용 부회장 26일 검찰 수사심의위…핵심쟁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법' 이미 적법 판결…법조계 "형사재판으로 뒤집기 어려워, 檢 무리한 기소""

민사문제를 형사처벌? 국가권력 남용 논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여부를 논의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 운명은 물론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갈등 등 경영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가 재계 1위 삼성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 재계와 법조계에선 앞선 민사 소송에서 경영권 승계 목적의 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이미 내려진 가운데 검찰이 국정 농단 사건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형사적인 처벌에 나선 데 대해 무리한 접근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는 26일 열리는 수사심의위 현안위원회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따른 기소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외부 인사들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법적 소양을 갖춘 전문가들이 참여해 이 부회장의 기소 타당성을 따지게 되는데 시세조종, 분식회계 등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불합리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불기소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이뤄진 이유가 최종적으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로 이어졌으며 이 부회장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합병비율을 1대 0.35로 산정해 합병하는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었는지 판단 여부에 따라 이 부회장의 기소·불기소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같은 합병 비율 산정 과정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경영승계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의심한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개입한 단서를 다수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자본주의에서 기업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불법이 될 수 없다며 검찰이 의심하는 합병 목적의 부당성 자체로는 위법성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다수다.

실제 이와 같은 법적 판단은 2017년 민사 소송에서 한 차례 내려진 바 있다.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을 상대로 제기한 합병무효소송 1심에서 삼성물산 손을 들어주며 경영권 승계 목적 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민사 재판에서는 증거 능력에 제한이 없어 모든 증거가 사용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문제없다는 판단이 나왔는데 증거 능력이 아주 엄격하게 제한되는 형사 재판에서는 그 판단을 뒤집고 유죄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증거를 확보했는지 모르겠지만 민사 재판의 판결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촉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서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018년 7월 삼성바이오가 2015년 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해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고의로 부풀렸다고 보고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작업과의 연관성을 규명해왔다.

반면 삼성은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에피스 설립 당시 삼성바이오의 에피스 지분율은 85%, 바이오젠은 15%였기 때문에 자회사로 처리했고, 신약개발이 2015년에서야 가시화되면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명확해지자 관계사로 처리를 해야 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끌어들여 무리하게 진행된 수사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이중 처벌 금지의 원칙'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및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러나 1심과 2심에서 이와 관련해 무죄 판결을 받자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라는 새로운 통로로 또다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수사를 단죄하는 결과가 됐다.

혐의는 달라졌지만 사실상 같은 사안으로 검찰이 약 4년에 걸쳐 두 번씩 기소를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구나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관련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이 내려져 이번에 기소가 되면 이미 처벌을 받은 사안에 대해 다시 한번 사법처리를 받게 되는 셈이 된다.

안병한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이 부회장이 경영승계와 관련해 이미 처벌을 받은 상태에서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수준을 넘어 명백한 입증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이 같은 입증이 없다면 무리가 기소라는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회계기준 변경과 합병, 그에 따른 주가 산정의 변화, 현재 주식시장에 참가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까지 고려했을 때 회사 경영과 관련한 법적 이슈를 형사 재판으로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성신약 사례처럼 민사 소송에서 합병 목적의 정당성과 합병 비율 산정의 적정성을 판단받아 실제 합병을 통해 손해를 끼쳤는지, 그렇다면 그 손해에 대해 적정하게 배상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합병과 관련해 이미 법원에서 그 효력을 인정했고 적법했다는 점을 밝혔다"면서 "이런 적법한 합병에 대해 다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해서 어떻게든 처벌을 하려는 것은 기존 법원의 판결을 검찰이 배척하는 모습이 돼 기소권의 남용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대외적으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2018년 7월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면서 제기한 7억7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87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이 걸려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삼성과 같은 글로벌 회사가 이 부회장 등 최고 경영진들이 형사 재판에 결부될 경우 엘리엇 같은 사모펀드와의 분쟁에서 약점을 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