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잡은 정의선·구광모…배터리 시장 '게임체인저' 태어나나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우경희 기자 2020.06.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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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2일 오창 LG화학 배터리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LG그룹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2일 오창 LG화학 배터리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LG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악수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글로벌 전기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의 시선이 22일 두 총수의 2시간을 넘는 회동에 쏠린다. 단순히 배터리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중장기적으로 어떤 협력관계를 구축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이 단순 협업을 뛰어넘어 협력의 정점인 '조인트벤처'(Joint Venture·JV, 합작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고 본다.

현대차 (237,000원 ▼7,000 -2.87%)는 전기차, 그 이상의 '미래 모빌리티'(운송수단) 기업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사 LG화학과 합작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이날 두 총수의 만남은 이런 미래 청사진들을 다각도로 점검하는 자리였다.



현대차·LG의 오래된 배터리 인연
두 손 잡은 정의선·구광모…배터리 시장 '게임체인저' 태어나나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이 이날 LG화학 오창공장에서 구 회장과 회동하면서 현대·기아차와 LG화학 (440,000원 ▼4,000 -0.90%) 간 JV 설립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사의 JV 설립 논의가 꽤 진척 됐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배터리의 심장 격인 '배터리셀' 부문의 JV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양사가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JV 설립 경험도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모비스 (261,500원 ▼3,000 -1.13%)와 LG화학은 2009년에 배터리팩 합작사인 'HL그린파워'를 세웠었다. 당시 LG화학은 기술유출 우려 탓에 JV에 소극적이었음에도 현대차의 손을 잡았다. HL그린파워가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셀을 공급받아 이를 주축으로 배터리팩을 생산해 현대모비스에 공급하는 구조다. 지난해 매출 1조2164억원을 올리며 사상 첫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상황은 HL그린파워 이상의 협업을 필요로한다. 특히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대어 폭스바겐과 JV설립 논의를 본격화하며 LG화학은 갈 길이 더 바빠졌다. 완성차-배터리업체 간 JV 협력은 현실이다. 양사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JV 추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JV설립이 불러올 나비효과…전세계 주목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 설치된  '하이차저'(Hi-Charger). /사진제공=현대차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 설치된 '하이차저'(Hi-Charger). /사진제공=현대차
양사 JV 설립은 시너지 효과도 클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실력있는 배터리 우군을 얻어야 한다. LG화학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위다.

LG화학이 '떠오르는' 스타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LG화학은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일본 파나소닉을 누르고, 올해 1~4월 누적 기준으로 세계 배터리 시장 1위 자리를 꿰찼다. 제너럴모터스(GM)과 폭스바겐, 지리자동차 등 미국, 유럽, 중국의 강자는 물론 전기차 세계 1위인 테슬라까지 LG화학이 공급처로 포섭한 결과다.

지난 30년 간 선제적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1만7000건 이상의 관련 특허를 보유한 것도 눈길을 끈다.

LG화학 입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은 놓칠 수 없는 사업 파트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전기차와 순수전기차(EV), 개인비행체(PAV)로 불리는 3각 편대를 앞세워 미래 모빌리티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모두 배터리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당장 현대차의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인 E-GMP를 통해 LG화학이 외형을 키울 수 있다. E-GMP를 통해 제네시스 전기차 라인이 본격 가동되면 제네시스의 브랜드 파워를 감안할 때 LG화학은 또 다른 성장동력을 만날 수 있다.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도약..삼성·LG·SK 얼라이언스 나오나
두 손 잡은 정의선·구광모…배터리 시장 '게임체인저' 태어나나
E-GMP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도약의 출발점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기차 56만대를 판매해 수소전기차까지 포함해 세계 3위권 업체로 올라서는 것이 목표다. 기아차도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을 지난해 2.1%에서 2025년 6.6%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구 회장과의 만남에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배터리 계열사인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난 것도 이런 큰 배경이 깔려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또 다른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인 SK이노베이션과의 협업을 모색하기 위해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만날 예정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의 거대한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 아래 삼성SDI와 LG화학에 이어 SK이노베이션까지 두루 섭렵하며 정 수석부회장은 토종 배터리 3사와의 협업을 넓혀갈 예정이다. 협업을 통한 윈윈이 기대된다.

SK-LG 배터리 분쟁에 영향 줄까 관심
LG화학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LG화학LG화학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LG화학
일부에선 정 수석부회장의 LG화학 방문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특허분쟁에도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사의 특허분쟁은 미국 특허당국이 LG화학의 손을 들어줬지만 여전히 보상금 합의를 놓고 접점 없는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양사의 분쟁은 이미 업계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 폭스바겐은 LG화학의 오랜 고객이지만 미국 전기차공장 배터리는 SK이노베이션(조지아공장)으로부터 공급받을 예정이었다. 양사 분쟁으로 공장 가동이 차질을 빚을 경우 폭스바겐 전기차 생산이 중단된다.

이렇다보니 양사의 배터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 수석부회장이 대화 창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앞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나서도 해결되지 않은 LG-SK 간 배터리 분쟁을 해결할 유일한 인물이 정 수석부회장인 셈이다.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한국 토종 배터리 강자들의 특허분쟁을 전 세계 배터리 경쟁사들은 꽃놀이패를 쥔 양 지켜보고 있다"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중국과 유럽, 미주의 완성차 업체들을 상대로 영업하려면 대승적 차원의 결단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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