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북한엔 유난히 '전, 화'가 많다

뉴스1 제공 2020.06.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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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돌파전 등 주요 국가 사업에 '-전'으로 '분위기 추동'
'주체화'로 자력갱생…북한 고유의 표현 방식 주목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현규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회장© 뉴스1최현규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회장© 뉴스1


(서울=뉴스1) 최현규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회장/KISTI 책임연구원 = 북한에선 지금 평양종합병원을 새로 건설 중이다.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착공부터 약 200일 동안 완공을 목표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총공격전'으로 기초 굴착 공사를 앞당겼다고 한다. 또한 북한 매체에서는 '충성의 돌격전, 치열한 철야전, 과감한 전격전'으로 건설 현장의 열기가 끓어오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은 기술혁신이나 집단적 경쟁 운동을 하면서 전쟁을 치르는 듯 '전(戰)'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식으로!"라고 하면서 투쟁 기풍을 본받을 것을 주문한다.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으로' 발전소 건설에 참가한 돌격대원들은 입체전, 전격전으로 성과를 부단히 확대해 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산 현장에도 쓰지만 대체로 건설과 복구 현장에 이런 '-전'이 많다. 평양종합병원 건설도 그렇지만 지난달에 준공한 순천인비료공장 건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학기술적 사안일 때는 '두뇌전, 탐구전, 창조전, 실력전, 기술전'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데, 예를 들면 "두뇌전, 실력전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려 생산과 과학기술을 밀착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많은 성과를 과학자, 기술자들이 이뤘다"라고 주장하고, 순천인비료공장 건설은 '공장의 모든 요소들과 공정을 자동화하고 철저히 노력절약형공업으로 만들기 위한 두뇌전, 창조전'으로 표현하였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펼치는 북한은 과학기술자와 대중을 과학기술대전(大戰)으로 힘 있게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 초부터 북한은 집단주의를 강조하며 "우리의 전진을 저애(해)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 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라고 주창하고 있다. 정면 돌파전을 시대적 과제라고 하면서 숨 가쁘게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북한은 지난 2016년부터 5년간 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당대회를 통해 제시하고 작년까지 이를 꾸준히 독려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5개년 전략에 대한 언급은 북한 매체에서 거의 사라지고 정면 돌파전이 이를 대체했다.

과거에도 북한은 이처럼 장기적 국가 계획을 추진하다가 중도에 변경하곤 했다. 2017년에는 만리마선구자대회를 추진하려다가 포기했다. 2013년부터 시작되었던 제4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도 끝을 보지 못했고, 이 계획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으로 이전된 듯하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전'이 들어가지 않은 사업들이 유독 북한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화'도 즐겨 쓰인다. 인재 강국화를 추구하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내세운 것이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이다. 전 인민을 이공계 대학 졸업생 수준의 과학기술 지식을 갖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 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며 과학기술로 자력갱생을 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에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되면서 전략적 방침으로 인민 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것을 주문했다. 이른바 '북한판 4화(四化)'가 지속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등장한다.

'주체화'는 북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용어다. 코크스를 쓰지 않고 생산하는 제철법으로 주체철을 만들고, 석유화학이 아닌 석탄화학으로 만든 비날론과 같은 주체섬유 등을 생산하면서도 주체화를 부쩍 강조한다. 벌써 10년 전에 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주체철 생산을 두고 경제 주체화의 승리라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사실 기술적 문제는 여전하다. 원료, 연료, 설비의 주체화를 실현하는 것은 여전한 숙제고, 경제강국 건설의 주요한 요구로 추구하고 있다.

현대화는 보통 주체화와 함께 쌍으로 등장하는 용어다. 철도 등 노후화된 인프라를 개건하는 것이기도 하고,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거나 무인화하는 경우에 이를 '현대화한다'라고 한다. 선진기술을 받아들이고 기술과 장비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개건 현대화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고, 이밖에도 공장 현대화와 관리 현대화 같은 것들이 있다.

'정보화'는 정보와 정보설비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생산수단이 되는 것을 말한다. 북한에서 경제의 정보화는 생산과 경영활동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고 경제활동에서 정보의 의의가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화는 사전적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모든 부문의 생산과 경영활동을 새로운 과학적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물 관리를 과학화한다, 수산 양식을 과학화한다는 등도 있고, 체육의 과학화, 감자 농사 등 농업생산의 과학화로도 쓰인다.

북한은 2018년 4월 이후 경제 발전 중심의 국가 전략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각 산업 부문의 생산, 특히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과학기술과 생산을 일체화한다는 것은 과학기술과 생산을 밀접 결합시켜 생산 공정을 과학기술적 토대에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즉, 생산 성장에 이바지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성과를 생산에 바로 적용하는 등 과학기술과 생산이 하나로 밀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당 정책으로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를 추진하면서 경제 발전의 직접적 기여 중심으로 과학기술을 내세우면서 현장 중심의 기술 발전을 하는 한계성을 가진다.

김정은 위원장은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에 경제 강국 건설의 지름길이 있고 인민들의 꿈과 이상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는 담보가 있다"라고 하면서 국산화를 주창했다.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 실현은 북한 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서 더더욱 강조되고 있다.

최근 대북 경제 제재에 따른 자원의 부족을 겪으면서 재자원화, 즉 자원 재활용은 '재자원화법'을 채택할 정도로 북한 경제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시작된 'CNC화'는 컴퓨터를 이용한 공작 기계로 설비를 첨단화하자는 것으로 최첨단 돌파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지금은 더 이상 강조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실용화, 지능화, 종합화, 만능화, 표준화 등이 북한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언어체계를 사용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문법과 어휘를 구사하기도 한다. 북한의 체제와 일하는 방식이 독특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전', '-화'는 북한의 특성을 보여 주는 고유한 표현이며 현재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한 선동적 운동의 방향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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