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문정인 특보와 남용의 '삼복백규'

머니투데이 한정수 기자 2020.06.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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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 '전쟁을 넘어서 평화로'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2020.6.15/뉴스1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 '전쟁을 넘어서 평화로'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2020.6.15/뉴스1


지난 15일 코스피지수가 4.76% 급락했다. 미국, 중국 등에서 코로나19(COVID-19) 재확산 우려에 북한 군사 행동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지수가 4% 넘게 급락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지난 3월 23일 이후 처음이다.

장 초반부터 흐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7.89포인트(0.84%) 내린 2114.41로 출발해 약보합권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정오 무렵에는 낙폭을 줄이며 상승 전환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4%대 급락을 예견하는 이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우리 당국자 입에서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 일이 틀어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에서 "아마 북에서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문 특보는 "연락사무소와 금강산을 폭파 시켜서라도 완전 형체가 없게끔 만들 수도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무효화시킬 수도 있고 군사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강력한 방위태세를 갖춰야 하고 전시준비태세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미국, 중국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 우려에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 딜링룸 전광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101.48포인트(4.76%) 하락한 2,030.82를,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2.91포인트(7.09%) 하락한 693.15을, 원·달러 환율은 12.2원 상승한 1216.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2020.6.15/뉴스1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미국, 중국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 우려에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 딜링룸 전광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101.48포인트(4.76%) 하락한 2,030.82를,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2.91포인트(7.09%) 하락한 693.15을, 원·달러 환율은 12.2원 상승한 1216.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2020.6.15/뉴스1
문 특보가 이 같은 발언을 한 시점이 오전 11시 40분쯤이다. 주요 언론 매체들이 문 특보의 발언을 기사화한 시점은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다.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코스피지수는 오후 1시 50분 처음으로 1% 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 3시가 되자 3%까지 낙폭을 키웠고 결국 4.76%까지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코스닥시장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장 마감이 가까워 오자 낙폭이 커지며 7.09%나 떨어졌다.

물론 오롯이 문 특보의 발언 때문에 증시 변동성이 커졌다고 탓하기는 어렵다. 원래 증시 등락은 다양한 정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방위산업주들의 주가 흐름을 보면 문 특보의 발언이 꽤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표적인 방위산업 테마주로 꼽히는 빅텍 (4,715원 ▲20 +0.43%)은 이날 오후 2시 전후로 급등해 상한가를 기록했다. 스페코 (3,745원 ▲90 +2.46%), 퍼스텍 (3,275원 ▼55 -1.65%) 등도 마찬가지 흐름이었다.

시장 관계자들은 문 특보가 발언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말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특보의 입에서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으니 일반 투자자들의 걱정이 얼마나 커졌을지 불 보듯 뻔하다. 외국인들은 오죽했을까. 이날 4785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코스피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이 정도 규모의 순매도세는 지난달 4일 이후 처음이다.


(파주=뉴스1) 임세영 기자 = 북한이 정부의 대북전단 엄정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대남 군사행동까지 예고하는 등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주변에서 경찰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검문을 하고 있다. 2020.6.14/뉴스1  (파주=뉴스1) 임세영 기자 = 북한이 정부의 대북전단 엄정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대남 군사행동까지 예고하는 등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주변에서 경찰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검문을 하고 있다. 2020.6.14/뉴스1
북한은 국내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열흘 내내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경험칙상으로 북한은 그런 존재였다.

‘논어’ 선진편에 삼복백규(三復白圭)가 나온다.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 남용이 백규 시를 하루 세 번 읊었는데, 말을 신중하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가상해 공자가 자기 조카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는 거다. 남용이 외운 시는 '시경'에 실린 것으로 “흰 구슬에 난 흠은 그래도 갈 수 있지만 말에 난 흠은 어찌할 수가 없구나(白圭之 尙可磨也 斯言之 不可爲也)”라는 내용이다.

주식 시장은 투자자들의 심리에 크게 좌우된다. 매일같이 각종 실적 자료, 경제 지표와 무관하게 오르내리는 종목들이 허다하다.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도 상한가, 하한가를 오가기도 한다. 문 특보의 발언은 6·15선언 의미를 퇴색시키는 남북관계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지만, 좀 더 정제된 언어로 대통령 특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발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덜하지 않았을까. 속절없이 곤두박질친 증시를 바라보면서 남용의 고사가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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