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수출의 본격적인 포문을 연 것은 2015년이다. 그 해에만 11건의 기술수출 계약이 체결됐다. 선두주자는 역시 한미약품이다. 그 해에만 4건의 메가딜을 성사시켰다. 계약금액만 7조5000억원이 넘었다. 한미약품이 한국 신약 기술수출 역사의 중심으로 인정받는 배경이다.
하지만 당시 맺은 계약은 현재 물거품이 됐다. 4건 모두 계약해지나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프랑스 사노피와 계약한 퀀텀프로젝트를 비롯해 미국 얀센·일라이릴리,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등과 결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기술수출 해지 현상은 현재의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를 고려할 때 필수불가결한 통과의례로 보고있다. 초기 개발능력을 적극 활용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현재의 계약금과 임상 진행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기술료를 받는 마일스톤 방식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완제품을 파는 게 아닌 신약 개발 가능성을 판매하는 것이어서 글로벌 시장에서 총액확정계약(럼섬계약 Lump Sum)을 기피하는 것도 리스크 분담의 사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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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태원 회장이 8일 오전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SK바이오팜을 방문해 연구원과 함께 개발 중인 신약 물질을 보고 있다. / 사진제공=SK
SK바이오팜은 199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신성장 동력 차원에서 신약개발에 착수한 것을 바탕으로 2011년에 설립됐다. 연구비와 개발비를 설립 첫해 229억원에서 2018년 1213억원까지 늘리는 등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신약개발의 시발점이 된 SK에너지 대덕연구소시절부터 따지면 27년간의 투자였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오너의 뚝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기간 재무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신약 개발에 매달린 결과는 최근에서야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지난달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명 엑스코프리)를 미국법인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미국시장에 출시한 것.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을 미국 시장에 직접 판매한 첫 번째 사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달 코스피 상장에 나선다. 상반기 기업공개(IPO) 공모 최대어로 꼽힐만큼 주목도가 높다.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4조원을 넘본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으로 투자심리가 가라앉은 영향으로 시장 가치보다 1조원을 낮춘 금액이다.
기술수출 기업에 지분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높인 사례도 있다. 2017년 스위스 기업 로이반트에 자가면역질환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수출한 한올바이오파마는 로이반트가 개발을 전담할 미국 바이오기업 이뮤노반트를 설립하자 지난해 1월 이 회사에 56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말 이뮤노반트가 나스닥에 상장하고 추가 지분을 획득하면서 185억원 가치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