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손해배상금 낸 신한은행, 배상금 비용처리 안돼"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2020.06.15 06:00
글자크기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손해배상금 낸 신한은행, 배상금 비용처리 안돼"


불법행위로 물게 된 손해배상금은 법인세 손금불산입 특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즉 회계상 비용처리가 안 된다는 취지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5부(재판장 박양준)는 최근 신한금융지주가 남세문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은행의 완전모법인으로 신한은행 등을 연결자법인으로 하는 연결납세방식을 적용해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다.)



A제지회사 대표인 엄모씨는 지난 2009년 8월 신한은행과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대표인 이모씨의 공동불법행위로 인해 경영권을 상실함에 따라 902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신한은행과 이모씨가 엄씨에게 245억여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일부 승소판결했고, 2심은 신한은행의 항소 일부를 받아들여 엄씨에게 150억여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후 2016년 11월 대법원도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신한은행은 엄씨에게 지연 이자까지 포함해 총 207억여원을 지급했고, 해당 판결이 확정된 '2016 사업연도 법인세 신고'시 이 사건 손해배상금을 손금산입(비용처리)했다.

하지만 서울지방국세청장은 2018년 7월 9일부터 4개월간 법인제세 통합조사를 실시하고 법인세를 경정·고지하면서, 이 사건 손해배상금에 대해서는 손금불산입했다.

그러자 신한금융지주는 2019년 2월, 신한은행이 2016 사업연도에 관련 민사사건의 확정판결에 따라 엄씨에게 지급한 손해배상금을 세무당국이 손금불산입한 부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각 금액을 손금산입해 과제표준 및 세액을 경정해 달라는 취지로 심판청구했다. 이에 2019년 9월, 조세심판원이 이를 기각했고, 이에 따라 남대문세무서가 손금불산입한 부분을 취소했다.


이에 신한은행은 "법인세법은 기본적으로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한 손배해상금을 손금으로 인정하고 있어 손해배상금이 손금불산입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경영권 이전을 위한 안정적 채권 회수를 꾀한 것'이라는 신한은행측 주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사회질서를 위반한 불법행위"라며 "해당 사건 손해배상금은 법인세법 제19조제2항이 규정한 손비 요건을 갖추지 못해 손금에 산입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히 앞서 민사사건 항소심법원이 "(제지 회사에 대한) 신한은행의 주식 매입과 경영권 분쟁 관여 등 행위가 선량한 풍속을 해치고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언급한 점에 주목했다.

원래 엄씨는 이모씨와 협의해 A제지회사를 인수한 후, 부회장으로 취임하고 경영권을 단독으로 행사했다. 그런데 A제지가 지분 19.8%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고, 엄씨가 명의신탁한 주식 등을 관리하던 이씨 역시 A제지측에 동조해 엄씨의 주식 반환을 거부했다. 이어 신한은행에 A주식을 매수해 적대적 인수합병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신한은행은 2005년 11월쯤, 이씨의 횡령행위에 기담해 A제지 총 발생주식 중 11.7%(280만주)를 시장가격 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수했고 같은해 12월 13일 열린 A제지의 임시주주총회에서 A제지 측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는 등 경영권 분쟁에 직접 개입했다. 그로 인해 엄씨는 A제지의 경영권을 상실했고, 이후 이씨는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동시에 신한은행은 공동불법행위자로 엄씨에게 경영권 상실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점을 반영해 재판부는 "이 사건 손해배상금 지급 의무는 신한은행이 이씨의 횡령행위에 가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그 동기와 경위, 행위의 내용 및 피해의 결과에 비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한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이와 같은 불법행위로 지출하게 된 손해배상금은 손금에 산입될 수 없다"고 했다.

구(舊) 법인세법 제19조(손금의 범위) 제2항은 '손비는 다른 법률에서 달리 정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법인의 사업과 관련해 발생하거나 지출된 손실 또는 비용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통상적인 것이거나 수익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통상적'인 비용은 다른 법인도 동일한 상황이라면 지출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업과 관련해 발생한 비용'은 해당 법인의 목적사업이나 영업내용을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해 사업상 필요성이 인정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의 주식을 취득해 한쪽 편에 가담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고유업무, 부수업무, 겸영업무의 정상적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이를 사업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통상적인 것이나 수익과 직접 관련된 것이라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손금 인정 요건으로서의 사업관련성, 통상성, 수익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아 이러한 사정만 비춰보더라도 이 사건 손해배상금은 손금에 산입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고도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