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있으면 7억 집주인"…정부 이번엔 '갭투자' 잡는다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최동수 기자, 박미주 기자 2020.06.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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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고삐풀린 갭투자 (上)

편집자주 12·16 부동산 대책이 나온지 반년이다. 무섭게 오르던 서울 아파트값을 잡는가 싶더니 반년도 안돼 다시 상승세다. 다주택자, 고가 아파트에 융단폭격식으로 초강력 대출규제와 보유세 강화를 내놨는데 결국 안 먹혔다. 시장에 풀린 많은 돈과 함께 '묻지마' 갭투자를 못 잡아서다. 서민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전세제도가 부동산 투기 지렛대로 변질된 '웃픈' 현실이다. 고삐풀린 갭투자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초강력 대출규제도 무력화, '갭투자' 잡는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책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강남권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br>
서울 아파트값은 강남4구인 송파(-0.17%) 강남(-0.12%) 강동(-0.06%) 서초(-0.04%)를 비롯해 용산(-0.01%) 등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 위주로 떨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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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31일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책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강남권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강남4구인 송파(-0.17%) 강남(-0.12%) 강동(-0.06%) 서초(-0.04%)를 비롯해 용산(-0.01%) 등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 위주로 떨어졌다.

사진은 31일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정부가 21번째 부동산 대책으로 '갭투자'(전세보증금을 낀 부동산 투자)를 막을 대책을 내놓는다. 지난 2018년 9·13 대책과 2019년 12·16 대책이 각각 다주택자와 고가주택에 대한 '초강력' 규제였다면 이번엔 전세보증금을 낀 '아파트 쇼핑족(族)'을 겨냥한다.



지방 아파트에까지 손 뻗은 갭투자를 막지 못하면 아무리 강력한 대출규제를 내놔도 결국 '무용지물'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14일 정부 관련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번주 21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 8일 기준 10주 만에 상승전환(+0.02%)한 가운데 12·16 대책의 주타깃이었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마저 오름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12·16 대책이 서울 집값 급등세는 잡았을지 몰라도 직전해 9·13 대책 후 서울 집값이 32주 연속 하락한 것에 비하면 '약발'이 오래가지 못했다. 더구나 서울 강북과 비규제 지역 9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값만 끌어 올려 사실상 실패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금지', '9억원 이상 LTV(주택담보인정비율) 20%로 강화'라는 강력한 대출규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 아파트 쇼핑족의 갭투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풍부한 유동성(현금)을 바탕으로 매매가격의 60%까지 차오른 전세보증금을 끼고 아파트를 매수하면 굳이 대출을 받을 이유가 없어서다. 정부가 규제지역 추가 지정과 대출규제 강화라는 추가대책을 예고했으나 투기수단으로 변질된 갭투자 대책을 제대로 못 내놓으면 이번에도 12·16과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다.


"1억 있으면 7억 집주인"…정부 이번엔 '갭투자' 잡는다
정부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동학개미운동' 하듯, 저금리 상황에서 젊은이들마저 신용대출과 일부 현금을 들고 갭투자로 아파트 쇼핑을 하고 있다"며 "투기적인 부동산 구매 수단으로 정착한 갭투자를 잡아야 부동산 대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12·16 대책 때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10건 중 6건(56.1%)은 전세금을 승계한 갭투자였다. 올 들어 1월~4월 갭투자 건수는 전년 대비 125% 급증했다.

정부는 9·13이나 12·16 때 다주택자, 9억원 초과 주택 구입자에게 전세대출 보증을 막는 규제 방안을 내놨다. 집 투자를 위해 전세대출을 유용하는 것을 막는 소극적 '갭투자 방지책'이라 효과 역시 제한적이었다.

전세보증 제한기준을 9억원 이하로 낮추거나 아예 임대소득자의 전세보증금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이 갭투자 대책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3주택자에 한해 월세뿐 아니라 전세금에도 과세하는데 과세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권화순 기자

"3억 아파트 3천만원에 싹쓸이"…전국 집값 띄우는 '갭투자 원정대'


(청주=뉴스1) 장수영 기자 = 8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 예정 부지 인근 도로변에 유치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를 충북 청주시로 선정, 5월 중 예비타당상 조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청주시는 평가항목 전반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리적 여건, 발전가능성 분야 등에서 타 지역 대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2020.5.8/뉴스1(청주=뉴스1) 장수영 기자 = 8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 예정 부지 인근 도로변에 유치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를 충북 청주시로 선정, 5월 중 예비타당상 조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청주시는 평가항목 전반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리적 여건, 발전가능성 분야 등에서 타 지역 대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2020.5.8/뉴스1
#지난달 8일 오전 8시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정부의 방사광 가속기 유치지역 공식 발표를 2시간30분 앞두고 투자자 수십명이 오창 일대 부동산마다 진을 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방사광 가속기 유치를 놓고 청주시와 전남 나주시가 맞붙었는데 청주시에 베팅하고 미리 내려온 것이다.

부동산 투자 동호회, 인터넷카페 등에서 무리지어 내려온 사람들은 부동산을 돌며 "가계약금을 바로 보낼 수 있다"며 "매도자 계좌번호만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살면서 이렇게 많은 손님(투자자)이 몰려온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미분양의 무덤'이었던 청주를 휩쓸고 있는 갭투자 원정대의 얘기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청주 시장은 갭투자 원정대가 어떻게 전국 집값을

띄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규제보다 빠른 진짜 '꾼'…"급등 전 이미 들어와 있다"

"1억 있으면 7억 집주인"…정부 이번엔 '갭투자' 잡는다


갭투자 원정대는 규제보다 한발 빠르다. 집값이 급등하기 전 시장에 먼저 들어간다. 부동산업자는 갭투자 원정대 중에서도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하는 투자자를 진짜 '(갭투자)꾼'이라고 부른다.

꾼들이 노리는 지역은 매매가 3억~4억원대 저가 아파트, 갭 수천만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지방 순으로 저평가된 곳을 찍는다. 청주 전 수원·용인·성남과 대전, 세종, 천안, 인천 등이 오른 이유다.

청주에 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당시 청주 부동산들조차 "왜 사냐?" 고 물을 정도였다. 수년째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현지 부동산도 좀처럼 상승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청주 흥덕구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8~9월쯤 외부 투자자들이 하나둘씩 내려와서 갭 3000만~4000만원을 끼고 집을 사기 시작했다"며 "전국을 돌며 3억원대 아파트가 남아있는 곳을 찾다가 청주까지 내려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 지역 찍고 온·오프 모임에 공유…후발대 뒤따라 투자

"1억 있으면 7억 집주인"…정부 이번엔 '갭투자' 잡는다
꾼들은 목표 지역을 정하고 자신이 이끄는 부동산 투자 동호회, 인터넷 카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카카오톡 오픈카톡방에서 투자처를 공유한다. 꾼들이 시장에 선진입하고 정보를 공유하면 후발 투자자가 뒤따른다.

후발 투자자가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 그 지역 집값 상승 속도가 빨라진다. 수천만원이었던 갭은 1억원을 넘어서며 매매가격도 오른다.

청주 오창읍 한 공인중개사는 "외지 투자자가 한번 내려와서 거래하더니 동호회나 모임 사람들도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했다"며 "1~2주 사이를 두고 수십명이 내려와 부동산을 보고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시간차를 두고 더 많은 후발 투자자와 소문을 들은 일반 투자자까지 합세하면 시장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내집마련과 실거주를 꿈꾸며 매매를 망설였던 사람들까지 뛰어들면 지역 전체가 들썩인다.

청주에 꾼들이 진입하기 시작한 지난해 9월 청주 외지인 투자는 463건으로 지난해 8월 295건 대비 56%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매입 건수 중 외지인 비중도 14%에서 22%로 늘었다. 이후 지난해 11월 청주 내 외지인 매입 건수는 총 1096건으로 급증해 청주시 전체 거래 중 외지인 매입 비중이 40.3%로 늘었다.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두산위브지웰시티2차아파트 매매/전세 시세 추이 /사진=호갱노노 캡쳐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두산위브지웰시티2차아파트 매매/전세 시세 추이 /사진=호갱노노 캡쳐
청주 대장아파트인 흥덕구 두산위브지웰시티2차아파트 전용 80㎡의 지난해 9월 평균 3억6000만원에 거래된 이후 지난해 12월 최고 4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9월 당시 이 아파트는 전세가가 3억원대로 3000만~4000만원으로 살 수 있었는데 외지인 투자가 늘면서 갭은 3개월새 1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청주 흥덕구 가경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가격이 계속 오르니 뒤늦게 청주 시민들이 따라서 사기 시작했고 집값은 더욱 오르게 됐다"며 "청주 시민들이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집값 상승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보고 더는 안 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갭투자 원정대'…수천만원 얹고 기존 계약 깨버리기도

"1억 있으면 7억 집주인"…정부 이번엔 '갭투자' 잡는다
갭투자 원정대의 투자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갭이 작거나 조건만 맞으면 현장을 보지 않는 묻지마 투자도 과감하게 진행한다.

청주 오창읍에서는 방사광 가속기 발표가 나기 전부터 가계약금을 넣을 매도인 계좌번호를 구하는 투자자가 많았다. 이들은 나주에 내려가서도 매도인 계좌를 받아놓은 사람들인데 유치지역 공식 발표가 나면 즉시 매도인 계좌로 바로 돈을 송금하려는 것이다.

청주 청원구 오창읍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발표 당일 매도인들이 청주 오창 확정 소식을 듣고 매물을 대부분 거둬들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어떻게서든지 매물을 찾아내려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계약을 맺은 물건도 수천만원을 얹어서 매입하겠다고 나서서 기존 계약을 깨버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결국 청주 실거주자가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최동수 기자



2030 청년들, 7억 아파트 1억으로 살 수 있는 '웃픈' 현실
서울 아파트 전경./사진= 김창현 기자서울 아파트 전경./사진= 김창현 기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직장인 이모씨(33·남)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7억원짜리 아파트 '갭투자'를 알아보고 있다. 전세보증금이 4억8000만원이라 2억2000만원만 있으면 매입할 수 있는 셈이다. 손에 쥔 현금 1억2000만원에 1억원은 대출 받아 매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투자용으로 미리 사두는 동시에 결혼했을 때 신혼집으로 쓸 생각에서다.

#무주택자에 어린 아이가 있는 서울 거주 외벌이 이모씨(37·남)는 6개월 전 현금 없이 수원시 영통구 광교 내 4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전세보증금이 3억1000만원이었고 나머지 1억4000만원은 전세대출로 마련했다. 주변에서 갭투자 성공 사례를 본 뒤 투자용으로 매수했다. 향후 둘째 아이가 태어날 경우 실거주도 고려하고 있다. 최근 이 아파트 실거래가는 약 6억원으로 올랐다.

20·30대 젊은이들이 갭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동학개미운동'의 주역인 이들이 부동산도 쇼핑하듯 사들이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간 집값 급등에 월급만으로 집을 사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과 추가 가격 상승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높아진 대출 문턱과 전세보증금 가격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 올해 20대 갭투자 전년比 3배로 급증… '줍줍'도 젊은층이 쓸어가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아파트 연령대별 갭투자자 비율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아파트 연령대별 갭투자자 비율
14일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아파트 입주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1~4월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아파트 갭투자자(임대목적 거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4월 9386명에서 올해 1~4월 2만1096명으로 124.8% 늘었다. 전체 거래에서 갭투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해 27.1%에서 올해 39.4%로 10%P(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젊은 세대의 갭투자가 크게 늘었다. 20대 임대목적 거래 건수는 지난해 416건에서 올해 1199건으로 3배가량이 됐다. 30대는 올해 6297건으로 2.7배, 40대는 5931건으로 2.1배가 됐다.

특히 20대는 갭투자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지난해 48%에서 올해 54%로 늘어났다. △30대는 26%에서 37% △40대는 27%에서 40% △50대는 27%에서 41% △60대는 24%에서 36%로 각각 비중이 커졌다.

'줍줍'으로 불리는 아파트 미계약분 청약 참여자 상당수도 20·30대가 주를 이루는 모양새다. 지난 2월 경기도 수원의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수원' 미계약분 무순위 청약 당첨자 중 20·30대라 할 수 있는 1980~1990년대생 당첨자가 34명으로 전체의 80.1%에 달했다.

◆높아진 전세가율에 갭투자 용이해져… 불나방 갭투자에 서울 중저가주택 가격 상승 악순환


"1억 있으면 7억 집주인"…정부 이번엔 '갭투자' 잡는다
자금 동원력이 크지 않은 젊은층들이 청약할 수 있던 이유는 전세보증금이다. 실제 직방에 따르면 올해 서울 입주1년차 이하 아파트의 분양가 대비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86.3%다. 집값의 13.7%만 현금으로 쥐고 있으면 아파트 매입이 가능하단 얘기다. 청약 대기수요 등으로 전셋값이 오르며 전세가율은 2018년 84.6% 대비 1.7%p 올랐다. 갭투자 여건이 좋아진 셈이다.

지방에까지 갭투자가 몰리면서 서울 중저가 주택 가격은 상승세다. 지난달 3분위 평균 주택가격은 8억1294만원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7.08% 상승했다. 1분위와 2분위 역시 같은 기간 3억9776만원, 6억3773만원으로 7.44%, 8.27% 올랐다. 고가 아파트인 4분위(6.22%)와 5분위(2.36%)보다 높은 상승률이다. 그러면서 서민들의 내집마련은 더 어려워졌고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층은 또 갭투자 요인이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젊은 층이 갭투자에 뛰어드는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에 투기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매도하기는 어렵다"며 "급격하게 오르는 국내 물가 등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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