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면 또 맞을텐데…아이는 그래도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기성훈 기자 2020.06.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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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아동학대 잔혹사

편집자주 충남 천안에서 9세 어린이가 계모에 의해 여행가방에 갇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 창녕에서는 부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해 집에서 탈출해 가게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는 아이가 나오는 등 아동 학대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집 밖을 나서기 어려운 아이들이 집 안에서 학대의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동 피해의 실태와 해결책을 점검한다.

매맞다 도망쳐도…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집에 가면 또 맞을텐데…아이는 그래도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천안 등 아동 비극 이어지지만…'학대 가해자 접근금지'는 '낙타가 바늘뚫기'

'엄마는 접근금지.'



초·중학생 여아 3명이 엄마들로부터 심각한 학대를 받아 지난해 서울 노원구가 세운 학대피해 아동쉼터에서 8개월 째 살고 있다. 노원구가 113㎡ 규모 아파트를 사들여 리모델링한 시설이며 위치는 가해자의 방문을 차단하기 위해 일반엔 공개되지 않는다. 이처럼 전격적인 분리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원가정 복귀'가 원칙인 현행 아동보호 체계상 '낙타가 바늘을 뚫는 것'에 비견할 만큼 드문 일이다.

충남 천안에서 "게임기를 고장내놓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한 남아가 계모(친부의 동거녀)에 의해 여행가방에 7시간 동안 감금당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남아가 살아 있을 때도 위험 신호는 있었다. 지난달 의료진 신고를 받고 경찰이 조사에 나섰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관들이 부모·아동 의사를 감안한 것이라며 '분리 불필요' 의견을 밝히면서 아이는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법원에 의해 아동이 학대피해아동쉼터로 인도되려면 학대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내려져야 할 뿐 아니라 아이도 "지금 집에 돌아가기 싫다"는 의사를 확실히 내야 한다. 부모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아이가 낯선 조사관들 앞에서 쉽게 이 같은 뜻을 밝히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경남 창녕에선 어머니와 그의 동거남으로부터 고문 수준의 학대를 받은 9살 피해 초등학생의 경우 목숨을 걸고 옆집 발코니를 통해 잠옷 차림에 맨발로 탈출했다. 빌라 4층 발코니에서 쇠사슬에 목이 묶이는 것은 물론 글루건과 불에 달군 쇠젓가락 등으로 발가락과 발바닥 등을 지지는 등의 학대를 겪었다고 한다.

◇서울 4개 쉼터엔 20여명…신고는 3399건


(천안=뉴스1) 김기태 기자 = 의붓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계모가 10일 오후 충남 천안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0.6.10/뉴스1(천안=뉴스1) 김기태 기자 = 의붓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계모가 10일 오후 충남 천안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0.6.10/뉴스1
보건복지부와 현 아동권리보장원의 전신인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8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연간 학대 사례 2만4604건 중 학대 피해 발생 직후 원가정에서 분리조치됐거나 원가정에 일단 머물다가 끝내 분리조치된 아이들은 3287명(13.4%)에 불과하다.

매맞다 발견되도 82%에 달하는 대부분 아이들의 경우 원가정 보호가 지속됐다. 서울에선 학대 사례로 의심되는 사건이 3399건(2017년 기준) 존재했음에도 노원 구립을 비롯한 시내 4개 쉼터에 거주하는 아동은 20여명 규모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럼에도 경찰은 적극적으로 분리에 나서지 않았고, 아동보호기구들은 개입이 사실상 힘들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분리 판정이 잘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훈육을 위해 체벌 등 징계가 필요하단 고정관념이 유지되고 있어 사태가 개선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민법엔 부모를 비롯한 친권자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동시에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문들이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국민생활기본법인 민법부터 체벌을 용인할 수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대변해 온 것은 잘못이란 지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동복지법을 적용해 지자체가 복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사건을 맡는데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사회복지사들은 상습적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가해자를 강당할 수가 없다"며 "그러니 영미권 국가들은 사법기관이 관여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숙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소장은 "아동학대는 신체·정서적·성학대·방임 등으로 나뉘는데 한 피해자가 여러 학대를 중복해 받는 경우가 많지만 부모들은 아동학대인지 잘 모르고 학대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언어적으로 강한 표현 역시도 학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어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지훈 기자

멍든 아이들 76%가 부모한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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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4604건, 28명'


2018년 기준 국내 아동학대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다. 가방 속에 갇혀 숨진 아이, 맨발로 학대 당하다 탈출한 아이 등 안타깝게도 아동학대는 너무나 빈번히 등장하면서 근절되지 않고 꾸준히 늘고 있다.

가정 학대로 숨진 아이들의 경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부모와 분리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살 수 있었던 아이들도 많아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3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아동학대…피해 아동 '2만18명'

13일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8 전국 아동학대 현황'에 따르면 전체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전년대비 2237건(10%) 늘어난 2만4604건을 기록했다. 2015년 1만1715건, 2016년 1만8700명, 2017년 2만2367명 등 매년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 중 82%는 원가정 보호 조치가 이뤄졌고, 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이 분리된 건 13.4%에 그쳤다.

과거 학대 피해를 겪은후 재학대를 껶은 아동은 2016년 1591건에서 2017년 2160건, 2018년에는 2543건으로 늘어났다.

원가정 보호 조치가 대부분 이뤄지지만 실제로 아동학대 행위자는 대부분 부모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사례 중 76.9%가 부모에 의한 학대였다. 이 중 95.6%는 친부모가 학대 가해자였다. 초중고교 직원, 보육 교직원,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 대리양육자가 학대한 비율은 15.9%, 친인척이 아동을 학대한 비율은 4.5%로 나타났다. 원가정 보호 조치는 재학대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아동학대 가해 부모 아이에 대한 강제적 관리 필요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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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동학대로 28명 사망…'1세 이하' 18명

최근 5년(2014~2018년)간 아동학대로 숨진 아동은 총 132명이었다. 2014년 14명이던 사망 아동 수는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으로 증가해왔다.

2018년 학대로 사망한 28명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0세(생후 12개월)와 1세(13~24개월)가 18명으로 가장 많았다. 신생아 및 영아에게 신체적 학대나 방임이 치명적임을 보여준다. 4·5·7·9세가 각 2명, 6·8세가 각각 1명이었다.

사망아동 학대 행위자 30명 가운데 83.3%(25명)는 부모였다. 이 중 친모가 53.3%(16명), 친부가 30%(9명)였다. 보육교직원이 가해자인 경우는 10%(3명), 아이돌보미는 3.3%(1명)였다.

학대 행위자는 20대가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30대(8명), 40대(6명)의 순이었다. 또 12명은 직업이 없었다. 주부도 5명이나 됐다. 신체적 학대(53.3%)로 사망에 이른 경우가 가장 많았다. 방임으로 인한 죽음도 30%에 달했다.

보건복지부는 아동 학대 가능성이 있는 가정을 빅데이터를 통해 발굴하는 '위기아동지원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지자체에 통보하고 있다. 장기간 학교에 나오지 않거나 예방 접종을 받지 않는 아이를 선제적으로 찾아내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실제 가정 방문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아동 학대 발생을 막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잇따른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뒤늦게 대책을 내놓으며 움직이기로 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2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아동학대 방지대책'을 논의한 결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중인 만 3세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전수 조사키로 했다. 또 최근 2~5월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을 다시 점검해 재학대 사례가 발견되면 엄중 대처할 계획을 밝혔다.

유 부총리는 "정부는 천안과 창녕에서와 같은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즉각적으로 시행하고,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개선 대책은 8월 말까지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성훈 기자

'아동학대'의 그림자, 62년간 이어온 내 아이 처벌권한 뺏는다
아동학대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아동학대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최근 잇따르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인해 법무부가 민법 제정 이후 62년 간 이어온 자녀 '징계권' 규정을 삭제키로 하는 등 정부·국회 차원의 각종 대책이 나오고 있다. 법·제도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관련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이다. 아동 학대를 근절하는데 효과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친권자, 자녀에 대한 징계권 삭제 추진

13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아동학대 사건이 다수 발생한 결과 민법상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제 915조)에 나오는 규정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징계가 아이에게 신체, 정신적 학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인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 이 같은 징계권은 현행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등이 담고 있는 내용과도 상충된다.

최근 잔학한 아동 학대 범죄가 이어지자 국회 차원에서도 아동 학대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법상 징계권 삭제 및 아동을 학대한 부모의 신상 공개, 자녀 살인 시 징역 7년 이상으로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아동 지킴이 3법'을 대표 발의했다.

형법상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에 대해선 7년 이상의 징역에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지만부모가 직계비속인 자녀를 살해한 경우는 별다른 규정이 없었다. 형법의 보통 살인죄 조항(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따라 처벌됐다.

◇10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두고 현장조사…공적개입 확대

또 지난 3월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오는 10월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두고 현장조사, 응급조치 등 관련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민간 상담사 위주로 진행됐던 아동학대 관련 업무 처리에 대한 공적 개입이 확대되는 것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란 학대받은 아동에 대한 발견·보호·치료를 신속처리하고 아동학대 예방을 담당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하는 기관이다. 통상 설치 주체의 직영이 아니라 민간 위탁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아동학대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현장조사에 응하지 않고 거부하는 자는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 받을 수 있다. 폭행·협박·위계·위력으로 방해할 경우엔 5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겼던 아동 학대 관련 조사에 대해 기초지방자치단체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다.

정부는 피해 아동 보호를 위해 아동학대가 발견되는 즉시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합동 점검팀도 구성해 '재학대 발견 특별 수사 기간'을 운영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천안에서 발생한 9세 어린이의 학대 사망 사건과 관련해 "위기의 아동을 사전에 확인하는 제도가 잘 작동되는지 잘 살펴보라"며 정부의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톨령은 청와대 참모진과 내부 회의에서 "위기의 아동을 파악하는 제도가 작동되지 않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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